[인터뷰] ‘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작가 “고요한 나무의 내면 표현하고 싶어”
입력 2021.11.21 (21:33)
수정 2021.11.2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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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소설가
Q. <식물들의 사생활>은 본인에게 어떤 작품?
이 작품을 쓸 때 마음이나 태도가 이런 것이었어요. 독자들과 좀 더 직접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동안에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예컨대 평론가라든지 다소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통과해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 소설 쓸 때는 대중적인 감각 같은 것?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Q. 신학을 전공했는데, 작품에 종교관을 투영했나?
종교와 세속의 중간의 언어, 그 언어를 통해서 삶의 진실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제가 특정 종교에 대한 교리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적은 없기 때문에 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종교적인 것은 다소 초월적인, 또는 정신주의적인 것, 넓은 의미의 정신주의, 이런 것으로 읽으면 내 다른 소설에 들어 있는 면과 접촉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충격적인 묘사들...집필 과정은 어땠나.
저도 이 소설을 쓰기가 참 힘들었어요. 예컨대 장애가 있는 아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사창가로 아이를 업고 정기적으로 사창가를 드나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들은 거예요. 그런데 내가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이것을 못 쓰겠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그 이야기가 내 메모장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홍유릉 산책하다가 때죽나무와 소나무가 한 몸처럼 붙어 있는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소설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런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요소가 결합돼 소설이 됐고.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간이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라고 흔히 하나의 단어로 말해버리는, 사랑 안에 들어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 예컨대 동물적인 요소, 정치적인 관련성과의 연관 속에서 인간이 욕망이나 사랑조차도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까 저도 앞부분 소설 쓸 때 힘들었고.
Q. ‘나무’를 소설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저 고요한 나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정말 어떤 것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저 나무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내면도 정말 그렇게 고요할까. 고요한 사람의 내면의 수군거림 같은 것을 제가 들은 거예요. 나무가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욕망을 안에 가진 채로 그 고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내적인,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그 힘을 길러야 되는 것일까, 그 생각을 하면서 그 신화로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Q. 제목은 왜 <식물들의 사생활>인가.
(사생활이란) 단어에 신비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밀, 욕망의 안쪽, 욕망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런 영역 그리고 개인의 고요한 삶의 모습, 그런 것들을 암시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서 ‘사생활’로 썼죠.
Q.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제가 스무 살 때부터 글을 써왔기 때문에 나이에 따라서 글이 조금씩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예술가들 보면 1기, 2기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그런 게 나한테 있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 이야기는 결국 시대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어떤 환경이 닥칠지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냥 제가 써오던 식으로 쓸 것 같고, 그 한결같음이 매너리즘으로 되지 않기 위한 정신무장? 이런 게 필요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Q. <식물들의 사생활>은 본인에게 어떤 작품?
이 작품을 쓸 때 마음이나 태도가 이런 것이었어요. 독자들과 좀 더 직접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동안에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예컨대 평론가라든지 다소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통과해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 소설 쓸 때는 대중적인 감각 같은 것?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Q. 신학을 전공했는데, 작품에 종교관을 투영했나?
종교와 세속의 중간의 언어, 그 언어를 통해서 삶의 진실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제가 특정 종교에 대한 교리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적은 없기 때문에 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종교적인 것은 다소 초월적인, 또는 정신주의적인 것, 넓은 의미의 정신주의, 이런 것으로 읽으면 내 다른 소설에 들어 있는 면과 접촉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충격적인 묘사들...집필 과정은 어땠나.
저도 이 소설을 쓰기가 참 힘들었어요. 예컨대 장애가 있는 아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사창가로 아이를 업고 정기적으로 사창가를 드나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들은 거예요. 그런데 내가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이것을 못 쓰겠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그 이야기가 내 메모장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홍유릉 산책하다가 때죽나무와 소나무가 한 몸처럼 붙어 있는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소설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런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요소가 결합돼 소설이 됐고.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간이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라고 흔히 하나의 단어로 말해버리는, 사랑 안에 들어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 예컨대 동물적인 요소, 정치적인 관련성과의 연관 속에서 인간이 욕망이나 사랑조차도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까 저도 앞부분 소설 쓸 때 힘들었고.
Q. ‘나무’를 소설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저 고요한 나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정말 어떤 것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저 나무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내면도 정말 그렇게 고요할까. 고요한 사람의 내면의 수군거림 같은 것을 제가 들은 거예요. 나무가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욕망을 안에 가진 채로 그 고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내적인,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그 힘을 길러야 되는 것일까, 그 생각을 하면서 그 신화로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Q. 제목은 왜 <식물들의 사생활>인가.
(사생활이란) 단어에 신비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밀, 욕망의 안쪽, 욕망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런 영역 그리고 개인의 고요한 삶의 모습, 그런 것들을 암시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서 ‘사생활’로 썼죠.
Q.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제가 스무 살 때부터 글을 써왔기 때문에 나이에 따라서 글이 조금씩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예술가들 보면 1기, 2기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그런 게 나한테 있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 이야기는 결국 시대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어떤 환경이 닥칠지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냥 제가 써오던 식으로 쓸 것 같고, 그 한결같음이 매너리즘으로 되지 않기 위한 정신무장? 이런 게 필요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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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1-11-21 21:36:04
이승우/소설가
Q. <식물들의 사생활>은 본인에게 어떤 작품?
이 작품을 쓸 때 마음이나 태도가 이런 것이었어요. 독자들과 좀 더 직접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동안에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예컨대 평론가라든지 다소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통과해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 소설 쓸 때는 대중적인 감각 같은 것?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Q. 신학을 전공했는데, 작품에 종교관을 투영했나?
종교와 세속의 중간의 언어, 그 언어를 통해서 삶의 진실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제가 특정 종교에 대한 교리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적은 없기 때문에 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종교적인 것은 다소 초월적인, 또는 정신주의적인 것, 넓은 의미의 정신주의, 이런 것으로 읽으면 내 다른 소설에 들어 있는 면과 접촉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충격적인 묘사들...집필 과정은 어땠나.
저도 이 소설을 쓰기가 참 힘들었어요. 예컨대 장애가 있는 아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사창가로 아이를 업고 정기적으로 사창가를 드나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들은 거예요. 그런데 내가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이것을 못 쓰겠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그 이야기가 내 메모장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홍유릉 산책하다가 때죽나무와 소나무가 한 몸처럼 붙어 있는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소설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런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요소가 결합돼 소설이 됐고.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간이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라고 흔히 하나의 단어로 말해버리는, 사랑 안에 들어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 예컨대 동물적인 요소, 정치적인 관련성과의 연관 속에서 인간이 욕망이나 사랑조차도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까 저도 앞부분 소설 쓸 때 힘들었고.
Q. ‘나무’를 소설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저 고요한 나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정말 어떤 것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저 나무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내면도 정말 그렇게 고요할까. 고요한 사람의 내면의 수군거림 같은 것을 제가 들은 거예요. 나무가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욕망을 안에 가진 채로 그 고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내적인,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그 힘을 길러야 되는 것일까, 그 생각을 하면서 그 신화로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Q. 제목은 왜 <식물들의 사생활>인가.
(사생활이란) 단어에 신비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밀, 욕망의 안쪽, 욕망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런 영역 그리고 개인의 고요한 삶의 모습, 그런 것들을 암시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서 ‘사생활’로 썼죠.
Q.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제가 스무 살 때부터 글을 써왔기 때문에 나이에 따라서 글이 조금씩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예술가들 보면 1기, 2기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그런 게 나한테 있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 이야기는 결국 시대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어떤 환경이 닥칠지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냥 제가 써오던 식으로 쓸 것 같고, 그 한결같음이 매너리즘으로 되지 않기 위한 정신무장? 이런 게 필요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Q. <식물들의 사생활>은 본인에게 어떤 작품?
이 작품을 쓸 때 마음이나 태도가 이런 것이었어요. 독자들과 좀 더 직접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동안에 의식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예컨대 평론가라든지 다소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통과해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 소설 쓸 때는 대중적인 감각 같은 것? 독자들이 좋아하는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Q. 신학을 전공했는데, 작품에 종교관을 투영했나?
종교와 세속의 중간의 언어, 그 언어를 통해서 삶의 진실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제가 특정 종교에 대한 교리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 적은 없기 때문에 이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종교적인 것은 다소 초월적인, 또는 정신주의적인 것, 넓은 의미의 정신주의, 이런 것으로 읽으면 내 다른 소설에 들어 있는 면과 접촉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충격적인 묘사들...집필 과정은 어땠나.
저도 이 소설을 쓰기가 참 힘들었어요. 예컨대 장애가 있는 아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사창가로 아이를 업고 정기적으로 사창가를 드나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들은 거예요. 그런데 내가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이것을 못 쓰겠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그 이야기가 내 메모장에만 있었어요. 그래서 홍유릉 산책하다가 때죽나무와 소나무가 한 몸처럼 붙어 있는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소설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그런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요소가 결합돼 소설이 됐고.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간이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이라고 흔히 하나의 단어로 말해버리는, 사랑 안에 들어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 예컨대 동물적인 요소, 정치적인 관련성과의 연관 속에서 인간이 욕망이나 사랑조차도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한계,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까 저도 앞부분 소설 쓸 때 힘들었고.
Q. ‘나무’를 소설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저 고요한 나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정말 어떤 것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저 나무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내면도 정말 그렇게 고요할까. 고요한 사람의 내면의 수군거림 같은 것을 제가 들은 거예요. 나무가 욕망이 없는 게 아니고 욕망을 안에 가진 채로 그 고요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떤 내적인,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그 힘을 길러야 되는 것일까, 그 생각을 하면서 그 신화로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Q. 제목은 왜 <식물들의 사생활>인가.
(사생활이란) 단어에 신비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밀, 욕망의 안쪽, 욕망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런 영역 그리고 개인의 고요한 삶의 모습, 그런 것들을 암시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서 ‘사생활’로 썼죠.
Q.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제가 스무 살 때부터 글을 써왔기 때문에 나이에 따라서 글이 조금씩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예술가들 보면 1기, 2기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그런 게 나한테 있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 이야기는 결국 시대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어떤 환경이 닥칠지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냥 제가 써오던 식으로 쓸 것 같고, 그 한결같음이 매너리즘으로 되지 않기 위한 정신무장? 이런 게 필요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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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기자 donke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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