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너무나 현재적인 도시의 악몽 - 편혜영의 ‘아오이 가든’
입력 2021.08.01 (22:21)
수정 2021.08.0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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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몇 년 동안 세계를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편혜영의 「아오이 가든」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2005년 출간된 이 소설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홍콩의 사스 바이러스 사태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2005년에는 장르 소설적인 분위기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병이 몇 년 동안 지구를 집어삼키고 있는 상황에서, 이 소설은 상상이 아니라 무서운 예언으로 제시된 '실재'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묘사된 상황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감염율은 높고 치료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병에 걸리면 죽는 일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나을 게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기 중에 떠도는 역병의 기운과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맞서느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다시 2005년의 '아오이 가든'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아오이 가든'은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역병 환자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 밖에 있을 곳이 없었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 세계는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떨어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쓰레기 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괴한 공간이다. "시커먼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첫 문장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도입부에 해당한다.
동물들의 사체와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는 부식되면서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이 구역질이 나는 지독한 냄새이다. 역병을 옮기는 빨간 스카프를 두른 소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철저한 고립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웅크리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은 "주검이거나 주검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 도시에서 산 것과 죽은 것은 거의 구별되지 않으며, 서로를 적의에 찬 시선으로 대한다.
바깥의 세계가 역병의 기운이 감도는 무서운 세계라면 집 안의 세계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집 안을 들락거리는 고양이나 떨어져 내리는 개구리처럼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있다. '그녀-엄마'와 살고 있는 '나'의 집에 팔 개월 만에 돌아온 '누이'는 임신한 상태이며 열병을 앓는다. 육체적으로 성장을 정지한 다리를 가진 불구의 '나'와, 움직일 때마다 붉은 눈을 흔적을 남기는 '그녀-엄마', 그리고 임신한 병든 누이는 이 공간의 결핍된 거주자들이며 나이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안과 밖을 넘나들며 계속 임신하는 고양이 때문에, 엄마가 고양이의 자궁을 들어내는 생생한 장면은 강렬한 상징성을 얻는다. 폐경을 맞은 엄마가 다시 월경을 시작하면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누이의 찢어진 가랑이에서도 지독한 냄새가 나오는 이 공간에서는, 좀 더 엽기적인 장면들이 기다리고 있다. 손에 밴 냄새를 씻어 내기 위해 손가락을 태운 '나'의 뱃속으로 고양이가 들어가 버리고, 누이는 붉은 개구리들을 낳는다. '내'가 그 개구리들과 함께 베란다 너머로 낙하하는 마지막 장면은, 더 나아갈 때 없는 도시의 악몽을 선사한다.
이 소설에서 월경과 임신 등의 여성적인 신체적 경험들은 가부장적 가족 제도 안에서의 정상적인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장면으로 제시된다. 이 공간에서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서서 낳았다는 기이한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모성'과 '여성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상징질서와 젠더 시스템은 전복된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익숙한 시선들은 이 소설에서는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한다. 성장하지 않는 불구의 '내'가 '개구리'처럼 되는 것은 인간 진화의 과정 자체를 뒤집는 상상력이다.
편혜영 소설의 서술자는 작중 인물의 정서적 개입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동일시의 가능성과도 거리를 두는 냉정하고 무표정한 태도를 취한다. 이 하드보일드한 문체의 효과는 세계에 대한 인간 주체의 시선의 우월적 위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휴먼 스토리도 배제한 채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동물과 시체의 일부로 되돌리게 한다. 편혜영 소설에서 인간은 '부패하기 쉬운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라는 낯익은 명제를 거슬러 간다.
21세기 팬데믹의 창궐이 자연에 대한 자본주의 문명의 폭주로 인한 것이라면, 이 사태는 인간이 한낱 전염병에 취약한 동물의 몸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문명이란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공간을 제거하고 은폐함으로써 세워진 세계이다. 역겨운 세부의 폭로를 통해 편혜영의 소설은 이 문명의 매끈함과 안전함의 허위를 벗겨낸다. 이 충격적이고 동시에 매혹적인 세계는 자본주의 문명 자체가 감추고 있는 야만을 드러낸다.
작가 편혜영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문학적 개성을 확장시켜왔다. 편혜영은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내면성과 휴먼 스토리를 이탈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학을 출발시켰다. 「아오이 가든」의 익명적인 그로테스크함은 그 시작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이후 작가는 일상적 현실 속에서 '현대'라는 지옥을 보다 예리하게 묘파해내는 자신만의 문법을 다듬어 왔으며, 『홀』을 비롯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편혜영은 가장 예리한 동시대의 감각으로 일상적 삶 안에 도사린 파국의 징후들을 소설화해왔다. 믿을 수 없겠지만, 2021년 우리는 아직도 역병이 도는 거리, 저 '아오이 가든'의 세계 속에 있다.
이광호/문학평론가
여기서 묘사된 상황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감염율은 높고 치료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병에 걸리면 죽는 일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나을 게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기 중에 떠도는 역병의 기운과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맞서느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다시 2005년의 '아오이 가든'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아오이 가든'은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역병 환자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 밖에 있을 곳이 없었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 세계는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떨어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쓰레기 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괴한 공간이다. "시커먼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첫 문장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도입부에 해당한다.
동물들의 사체와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는 부식되면서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이 구역질이 나는 지독한 냄새이다. 역병을 옮기는 빨간 스카프를 두른 소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철저한 고립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웅크리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은 "주검이거나 주검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 도시에서 산 것과 죽은 것은 거의 구별되지 않으며, 서로를 적의에 찬 시선으로 대한다.
바깥의 세계가 역병의 기운이 감도는 무서운 세계라면 집 안의 세계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집 안을 들락거리는 고양이나 떨어져 내리는 개구리처럼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있다. '그녀-엄마'와 살고 있는 '나'의 집에 팔 개월 만에 돌아온 '누이'는 임신한 상태이며 열병을 앓는다. 육체적으로 성장을 정지한 다리를 가진 불구의 '나'와, 움직일 때마다 붉은 눈을 흔적을 남기는 '그녀-엄마', 그리고 임신한 병든 누이는 이 공간의 결핍된 거주자들이며 나이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안과 밖을 넘나들며 계속 임신하는 고양이 때문에, 엄마가 고양이의 자궁을 들어내는 생생한 장면은 강렬한 상징성을 얻는다. 폐경을 맞은 엄마가 다시 월경을 시작하면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누이의 찢어진 가랑이에서도 지독한 냄새가 나오는 이 공간에서는, 좀 더 엽기적인 장면들이 기다리고 있다. 손에 밴 냄새를 씻어 내기 위해 손가락을 태운 '나'의 뱃속으로 고양이가 들어가 버리고, 누이는 붉은 개구리들을 낳는다. '내'가 그 개구리들과 함께 베란다 너머로 낙하하는 마지막 장면은, 더 나아갈 때 없는 도시의 악몽을 선사한다.
이 소설에서 월경과 임신 등의 여성적인 신체적 경험들은 가부장적 가족 제도 안에서의 정상적인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장면으로 제시된다. 이 공간에서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서서 낳았다는 기이한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모성'과 '여성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상징질서와 젠더 시스템은 전복된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익숙한 시선들은 이 소설에서는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한다. 성장하지 않는 불구의 '내'가 '개구리'처럼 되는 것은 인간 진화의 과정 자체를 뒤집는 상상력이다.
편혜영 소설의 서술자는 작중 인물의 정서적 개입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동일시의 가능성과도 거리를 두는 냉정하고 무표정한 태도를 취한다. 이 하드보일드한 문체의 효과는 세계에 대한 인간 주체의 시선의 우월적 위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휴먼 스토리도 배제한 채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동물과 시체의 일부로 되돌리게 한다. 편혜영 소설에서 인간은 '부패하기 쉬운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라는 낯익은 명제를 거슬러 간다.
21세기 팬데믹의 창궐이 자연에 대한 자본주의 문명의 폭주로 인한 것이라면, 이 사태는 인간이 한낱 전염병에 취약한 동물의 몸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문명이란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공간을 제거하고 은폐함으로써 세워진 세계이다. 역겨운 세부의 폭로를 통해 편혜영의 소설은 이 문명의 매끈함과 안전함의 허위를 벗겨낸다. 이 충격적이고 동시에 매혹적인 세계는 자본주의 문명 자체가 감추고 있는 야만을 드러낸다.
작가 편혜영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문학적 개성을 확장시켜왔다. 편혜영은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내면성과 휴먼 스토리를 이탈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학을 출발시켰다. 「아오이 가든」의 익명적인 그로테스크함은 그 시작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이후 작가는 일상적 현실 속에서 '현대'라는 지옥을 보다 예리하게 묘파해내는 자신만의 문법을 다듬어 왔으며, 『홀』을 비롯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편혜영은 가장 예리한 동시대의 감각으로 일상적 삶 안에 도사린 파국의 징후들을 소설화해왔다. 믿을 수 없겠지만, 2021년 우리는 아직도 역병이 도는 거리, 저 '아오이 가든'의 세계 속에 있다.
이광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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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 너무나 현재적인 도시의 악몽 - 편혜영의 ‘아오이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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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8-01 22:21:09
- 수정2021-08-01 22:21:35
팬데믹이 몇 년 동안 세계를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편혜영의 「아오이 가든」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2005년 출간된 이 소설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홍콩의 사스 바이러스 사태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2005년에는 장르 소설적인 분위기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코로나 감염병이 몇 년 동안 지구를 집어삼키고 있는 상황에서, 이 소설은 상상이 아니라 무서운 예언으로 제시된 '실재'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묘사된 상황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감염율은 높고 치료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병에 걸리면 죽는 일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나을 게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기 중에 떠도는 역병의 기운과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맞서느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다시 2005년의 '아오이 가든'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아오이 가든'은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역병 환자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 밖에 있을 곳이 없었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 세계는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떨어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쓰레기 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괴한 공간이다. "시커먼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첫 문장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도입부에 해당한다.
동물들의 사체와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는 부식되면서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이 구역질이 나는 지독한 냄새이다. 역병을 옮기는 빨간 스카프를 두른 소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철저한 고립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웅크리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은 "주검이거나 주검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 도시에서 산 것과 죽은 것은 거의 구별되지 않으며, 서로를 적의에 찬 시선으로 대한다.
바깥의 세계가 역병의 기운이 감도는 무서운 세계라면 집 안의 세계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집 안을 들락거리는 고양이나 떨어져 내리는 개구리처럼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있다. '그녀-엄마'와 살고 있는 '나'의 집에 팔 개월 만에 돌아온 '누이'는 임신한 상태이며 열병을 앓는다. 육체적으로 성장을 정지한 다리를 가진 불구의 '나'와, 움직일 때마다 붉은 눈을 흔적을 남기는 '그녀-엄마', 그리고 임신한 병든 누이는 이 공간의 결핍된 거주자들이며 나이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안과 밖을 넘나들며 계속 임신하는 고양이 때문에, 엄마가 고양이의 자궁을 들어내는 생생한 장면은 강렬한 상징성을 얻는다. 폐경을 맞은 엄마가 다시 월경을 시작하면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누이의 찢어진 가랑이에서도 지독한 냄새가 나오는 이 공간에서는, 좀 더 엽기적인 장면들이 기다리고 있다. 손에 밴 냄새를 씻어 내기 위해 손가락을 태운 '나'의 뱃속으로 고양이가 들어가 버리고, 누이는 붉은 개구리들을 낳는다. '내'가 그 개구리들과 함께 베란다 너머로 낙하하는 마지막 장면은, 더 나아갈 때 없는 도시의 악몽을 선사한다.
이 소설에서 월경과 임신 등의 여성적인 신체적 경험들은 가부장적 가족 제도 안에서의 정상적인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장면으로 제시된다. 이 공간에서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서서 낳았다는 기이한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모성'과 '여성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상징질서와 젠더 시스템은 전복된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익숙한 시선들은 이 소설에서는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한다. 성장하지 않는 불구의 '내'가 '개구리'처럼 되는 것은 인간 진화의 과정 자체를 뒤집는 상상력이다.
편혜영 소설의 서술자는 작중 인물의 정서적 개입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동일시의 가능성과도 거리를 두는 냉정하고 무표정한 태도를 취한다. 이 하드보일드한 문체의 효과는 세계에 대한 인간 주체의 시선의 우월적 위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휴먼 스토리도 배제한 채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동물과 시체의 일부로 되돌리게 한다. 편혜영 소설에서 인간은 '부패하기 쉬운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라는 낯익은 명제를 거슬러 간다.
21세기 팬데믹의 창궐이 자연에 대한 자본주의 문명의 폭주로 인한 것이라면, 이 사태는 인간이 한낱 전염병에 취약한 동물의 몸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문명이란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공간을 제거하고 은폐함으로써 세워진 세계이다. 역겨운 세부의 폭로를 통해 편혜영의 소설은 이 문명의 매끈함과 안전함의 허위를 벗겨낸다. 이 충격적이고 동시에 매혹적인 세계는 자본주의 문명 자체가 감추고 있는 야만을 드러낸다.
작가 편혜영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문학적 개성을 확장시켜왔다. 편혜영은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내면성과 휴먼 스토리를 이탈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학을 출발시켰다. 「아오이 가든」의 익명적인 그로테스크함은 그 시작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이후 작가는 일상적 현실 속에서 '현대'라는 지옥을 보다 예리하게 묘파해내는 자신만의 문법을 다듬어 왔으며, 『홀』을 비롯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편혜영은 가장 예리한 동시대의 감각으로 일상적 삶 안에 도사린 파국의 징후들을 소설화해왔다. 믿을 수 없겠지만, 2021년 우리는 아직도 역병이 도는 거리, 저 '아오이 가든'의 세계 속에 있다.
이광호/문학평론가
여기서 묘사된 상황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감염율은 높고 치료제는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병에 걸리면 죽는 일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나을 게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기 중에 떠도는 역병의 기운과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맞서느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다시 2005년의 '아오이 가든'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아오이 가든'은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역병 환자가 발생한 아파트 단지였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 밖에 있을 곳이 없었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 세계는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떨어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쓰레기 더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괴한 공간이다. "시커먼 개구리들이 비에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첫 문장은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도입부에 해당한다.
동물들의 사체와 쓰레기로 가득 찬 도시는 부식되면서 지독한 냄새를 풍긴다.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이 구역질이 나는 지독한 냄새이다. 역병을 옮기는 빨간 스카프를 두른 소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철저한 고립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웅크리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은 "주검이거나 주검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 도시에서 산 것과 죽은 것은 거의 구별되지 않으며, 서로를 적의에 찬 시선으로 대한다.
바깥의 세계가 역병의 기운이 감도는 무서운 세계라면 집 안의 세계가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집 안을 들락거리는 고양이나 떨어져 내리는 개구리처럼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있다. '그녀-엄마'와 살고 있는 '나'의 집에 팔 개월 만에 돌아온 '누이'는 임신한 상태이며 열병을 앓는다. 육체적으로 성장을 정지한 다리를 가진 불구의 '나'와, 움직일 때마다 붉은 눈을 흔적을 남기는 '그녀-엄마', 그리고 임신한 병든 누이는 이 공간의 결핍된 거주자들이며 나이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안과 밖을 넘나들며 계속 임신하는 고양이 때문에, 엄마가 고양이의 자궁을 들어내는 생생한 장면은 강렬한 상징성을 얻는다. 폐경을 맞은 엄마가 다시 월경을 시작하면서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누이의 찢어진 가랑이에서도 지독한 냄새가 나오는 이 공간에서는, 좀 더 엽기적인 장면들이 기다리고 있다. 손에 밴 냄새를 씻어 내기 위해 손가락을 태운 '나'의 뱃속으로 고양이가 들어가 버리고, 누이는 붉은 개구리들을 낳는다. '내'가 그 개구리들과 함께 베란다 너머로 낙하하는 마지막 장면은, 더 나아갈 때 없는 도시의 악몽을 선사한다.
이 소설에서 월경과 임신 등의 여성적인 신체적 경험들은 가부장적 가족 제도 안에서의 정상적인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장면으로 제시된다. 이 공간에서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서서 낳았다는 기이한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처럼 '모성'과 '여성성'을 둘러싼 지배적인 상징질서와 젠더 시스템은 전복된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익숙한 시선들은 이 소설에서는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한다. 성장하지 않는 불구의 '내'가 '개구리'처럼 되는 것은 인간 진화의 과정 자체를 뒤집는 상상력이다.
편혜영 소설의 서술자는 작중 인물의 정서적 개입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한 독자들의 동일시의 가능성과도 거리를 두는 냉정하고 무표정한 태도를 취한다. 이 하드보일드한 문체의 효과는 세계에 대한 인간 주체의 시선의 우월적 위치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휴먼 스토리도 배제한 채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동물과 시체의 일부로 되돌리게 한다. 편혜영 소설에서 인간은 '부패하기 쉬운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다'라는 낯익은 명제를 거슬러 간다.
21세기 팬데믹의 창궐이 자연에 대한 자본주의 문명의 폭주로 인한 것이라면, 이 사태는 인간이 한낱 전염병에 취약한 동물의 몸을 가졌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문명이란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공간을 제거하고 은폐함으로써 세워진 세계이다. 역겨운 세부의 폭로를 통해 편혜영의 소설은 이 문명의 매끈함과 안전함의 허위를 벗겨낸다. 이 충격적이고 동시에 매혹적인 세계는 자본주의 문명 자체가 감추고 있는 야만을 드러낸다.
작가 편혜영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문학적 개성을 확장시켜왔다. 편혜영은 한국의 여성 작가들이 보여주었던 내면성과 휴먼 스토리를 이탈하는 것으로 자신의 문학을 출발시켰다. 「아오이 가든」의 익명적인 그로테스크함은 그 시작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 이후 작가는 일상적 현실 속에서 '현대'라는 지옥을 보다 예리하게 묘파해내는 자신만의 문법을 다듬어 왔으며, 『홀』을 비롯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편혜영은 가장 예리한 동시대의 감각으로 일상적 삶 안에 도사린 파국의 징후들을 소설화해왔다. 믿을 수 없겠지만, 2021년 우리는 아직도 역병이 도는 거리, 저 '아오이 가든'의 세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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