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가 성석제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것은?

입력 2021.10.17 (21:31) 수정 2021.10.1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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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 담고 싶었던 것?

성석제 소설가

고향이 경북 상주 농촌 출신이고요. 어린 시절을 보내고 30대 중반쯤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설을 쓰려면 아무래도 장소가 필요한데 농촌 출신이다 보니 농촌이 맞아요, 제 체질에. 그래서 농촌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여기서 좀 쓰고 저기서 좀 쓰고 그러면서 이제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된 거죠. 제가 어릴 때 알고 있던 목가적인 곳이 아니라 정말 삶이 힘들고 고단하구나. 그 안에서도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한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착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지만, 그렇게 (농촌 공동체가) 와해되어 가고 있는 것, 또 그런 이유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해보고 싶었고, 어떻게 해서든 이걸 최소한 늦추거나 이럴 수 있는 방안을 누가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 방안은 어떤 것일까? 그럴 때 이제 황만근이라는 바보처럼 보이는 사람이 현명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나...

제가 어렸을 때도 늘 농촌공동체든 어떤 공동체든 보면, 아무래도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을 부양합니다. 같이 살아가는, 공존하는 거죠. 그런 게 말 그대로 공동체의 미덕이라고 생각을 했고. 또 그 안에 살아가는 그런 존재들은 어떻게 자기 생존을 하나, 공동체에 어떻게 보답을 하나? 그것이 이제 사역이라든지 공동의 노역을 자기가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아마 같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방식이 아닐까 생각을 해서 그런 인물의 역할을 만들었죠.

판소리를 떠울리게 하는 고전소설 같은 구조?

대학 초인가 우연히 판소리를 접하게 됐는데, 판소리 하고 민요들. 우리 민요 정선아리랑이라든지 그것을 수집 채록해 가지고 이제 음반으로 만들어 가지고 배포하는 데가 있었습니다. 수십 장의 음반을 접하게 됐죠. 그래서 그거를 한 최소한 수십 번 들었던 것 같아요 각각을.

그러면서 뭔가 내 몸속에 내재해 있던, 내가 있는지도 몰랐던 어떤 그런 기운 같은 것들이 드디어 외부의 존재하는 줄 몰랐던 어떤 것과 만나서 제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쓰면서 현대소설의 양식보다는 오히려 옛 것들에 의존해서, 의고적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저한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신기한 건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는다는 거죠. 별로 개의치 않아요. 평론을 하고 이런 분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소설 읽는 사람들은 '뭐, 이럴 수도 있지'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저도 그걸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죠.

우리가 '바보 이야기'를 읽는 이유

이영준 / 문학평론가·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국의 해학적 전통, 판소리 전통에 맥이 닿아 있는 것이 우리가 보통 '바보 이야기'는 우리는 아주 긴장감 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우습고 또 보통 바보 이야기는 우리가 우월감을 느낄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도. 그래서 그 사람을 낮춰보고 이제 그 사람을 우스개 삼아서 놀리곤 하는데 사실은 그 바보가 하는 말과 행동 속에 엄청난 깊은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은연 중에 알고 있어요. 사실은 무시하고 깔보고 하지만 그래서 한국의 오랜 얘기들 속에는 이미 들어있어요. 사실은 그 바보들이 보여주고 있는 삶에 대한 충실한 태도, 이런 것이 우리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보 이야기를 읽는 건지도 몰라요.

작가 성석제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것?

어떤 의도나 논리로 설득을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편이 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설득을 하고 싶다면 공감이 가장 효율적인 설득 도구니까요. 도시나 뭐 농촌이나 어디나 할 것 없이, 있는 실상을 물론 허구적인 설정이지만 개연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그게 소설이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를 포함한 어떤 커뮤니티든 간에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차별, 다음에 폭력, 온정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런 것들을 어떤 방향을 바꿔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공감하고 난 다음의 독자와 공감하기 전의 독자는 분명히 다른 거니까요. 그 달라진 것에 의해서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수도 있고요. 저는 나아지길 바랍니다.

편집 :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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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17 21:31:16
    • 수정2021-10-17 21: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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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 담고 싶었던 것?

성석제 소설가

고향이 경북 상주 농촌 출신이고요. 어린 시절을 보내고 30대 중반쯤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소설을 쓰려면 아무래도 장소가 필요한데 농촌 출신이다 보니 농촌이 맞아요, 제 체질에. 그래서 농촌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여기서 좀 쓰고 저기서 좀 쓰고 그러면서 이제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된 거죠. 제가 어릴 때 알고 있던 목가적인 곳이 아니라 정말 삶이 힘들고 고단하구나. 그 안에서도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한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걸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착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지만, 그렇게 (농촌 공동체가) 와해되어 가고 있는 것, 또 그런 이유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해보고 싶었고, 어떻게 해서든 이걸 최소한 늦추거나 이럴 수 있는 방안을 누가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 방안은 어떤 것일까? 그럴 때 이제 황만근이라는 바보처럼 보이는 사람이 현명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나...

제가 어렸을 때도 늘 농촌공동체든 어떤 공동체든 보면, 아무래도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그 사람들을 부양합니다. 같이 살아가는, 공존하는 거죠. 그런 게 말 그대로 공동체의 미덕이라고 생각을 했고. 또 그 안에 살아가는 그런 존재들은 어떻게 자기 생존을 하나, 공동체에 어떻게 보답을 하나? 그것이 이제 사역이라든지 공동의 노역을 자기가 맡아서 하는 것으로, 아마 같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방식이 아닐까 생각을 해서 그런 인물의 역할을 만들었죠.

판소리를 떠울리게 하는 고전소설 같은 구조?

대학 초인가 우연히 판소리를 접하게 됐는데, 판소리 하고 민요들. 우리 민요 정선아리랑이라든지 그것을 수집 채록해 가지고 이제 음반으로 만들어 가지고 배포하는 데가 있었습니다. 수십 장의 음반을 접하게 됐죠. 그래서 그거를 한 최소한 수십 번 들었던 것 같아요 각각을.

그러면서 뭔가 내 몸속에 내재해 있던, 내가 있는지도 몰랐던 어떤 그런 기운 같은 것들이 드디어 외부의 존재하는 줄 몰랐던 어떤 것과 만나서 제 안에서 하나가 되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쓰면서 현대소설의 양식보다는 오히려 옛 것들에 의존해서, 의고적이라고 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저한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신기한 건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는다는 거죠. 별로 개의치 않아요. 평론을 하고 이런 분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소설 읽는 사람들은 '뭐, 이럴 수도 있지'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요. 저도 그걸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죠.

우리가 '바보 이야기'를 읽는 이유

이영준 / 문학평론가·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한국의 해학적 전통, 판소리 전통에 맥이 닿아 있는 것이 우리가 보통 '바보 이야기'는 우리는 아주 긴장감 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우습고 또 보통 바보 이야기는 우리가 우월감을 느낄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도. 그래서 그 사람을 낮춰보고 이제 그 사람을 우스개 삼아서 놀리곤 하는데 사실은 그 바보가 하는 말과 행동 속에 엄청난 깊은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은연 중에 알고 있어요. 사실은 무시하고 깔보고 하지만 그래서 한국의 오랜 얘기들 속에는 이미 들어있어요. 사실은 그 바보들이 보여주고 있는 삶에 대한 충실한 태도, 이런 것이 우리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보 이야기를 읽는 건지도 몰라요.

작가 성석제가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것?

어떤 의도나 논리로 설득을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편이 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설득을 하고 싶다면 공감이 가장 효율적인 설득 도구니까요. 도시나 뭐 농촌이나 어디나 할 것 없이, 있는 실상을 물론 허구적인 설정이지만 개연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그게 소설이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계를 포함한 어떤 커뮤니티든 간에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차별, 다음에 폭력, 온정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런 것들을 어떤 방향을 바꿔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공감하고 난 다음의 독자와 공감하기 전의 독자는 분명히 다른 거니까요. 그 달라진 것에 의해서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수도 있고요. 저는 나아지길 바랍니다.

편집 :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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