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성과 홍보 ‘올인’…지나치다 탈날라
입력 2021.05.26 (07:01)
수정 2021.05.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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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5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 정부합동 온라인 브리핑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갑자기 열린 3개 부처 합동 브리핑…"방미 성과 홍보"
그제(24일) 밤 9시가 넘은 시각,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3개 부처의 합동 브리핑 일정이 기자들에게 공지됐습니다. 어제 오전 정의용 외교부 장관, 문승욱 산업부 장관, 권덕철 복지부 장관이 합동으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브리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들이 브리핑 현장에 참석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처 별로 기자들의 사전 질문을 3개씩만 받아 장관들이 답변하는 다소 일방적인 형식이었습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브리핑 내용 중 한미 간에 이미 합의된 '백신 파트너십' 전문가 그룹 구성을 다음달 초까지 마무리한다는 일정 외에 기존 방미 성과 발표에서 더 나아간 내용은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직후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방미 성과를 경제협력, 백신,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 분야별로 각 부처에서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애초 예정에 없던 3개 부처 장관들의 합동 브리핑은 이처럼 대통령의 긴급 지시에 따라 서둘러 마련된 대국민 홍보 행사로 보입니다.
비단 합동 브리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그제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정상회담 성과를 놓고 단독 대담을 했고,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역시 이번 회담의 성과를 알리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을 이끈 핵심 주역들이 총출동해 회담의 성과를 전방위적으로 홍보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SNS를 통해 이번 방문에 대해 "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자평할 정도로 회담 성과가 컸다는 내부 평가와는 달리 국민들에게는 이런 결과가 잘 전달되지 않아 이번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각에 온도차가 있다는 상황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정의용 장관은 KBS와 대담을 마친 뒤, 이번 정상회담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국민들한테 소개가 됐으면 좋겠는데 언론의 관심사는 다른 것 같다며 안타깝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운데)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총리-부총리 협의회에 참석해 있다.
■ 정부여당 한미 정상회담 홍보 '올인'…"최상의 성과"
정부 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어제 취임 후 첫 '총리-부총리 협의회'를 열고 문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공유했습니다. 국무회의에서는 회담 결과를 두고 "유례없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의원총회를 열고 "대통령께서 최상의 방미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셨다"고 거듭 찬사를 보냈습니다.
문 대통령은 오늘(26일) 여야 5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직접 방미 성과를 설명할 계획입니다.
■ "'한미회담 띄우기', 北 대화 유인에 장애 될 수도"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지만 '다 잘했다' 식의 획일적인 성과 포장에 대해서는 일부 우려 섞인 시각도 나옵니다. 특히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실제로 끌어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홍보는 북한의 호응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사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무조건적인 홍보가 북한이나 중국 관점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라면서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라고 내세우는 대북공조에 있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오는 데 오히려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과 홍보를 하더라도 다양한 영역의 회담 성과 중 특정 영역을 강조하는 식으로 전략적인 행보를 해야한다"며 "특히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북한이 실제로 대화 테이블까지 나와야 진짜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타이완 문제가 언급된 것을 놓고 "타이완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라며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관련국들은 불장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친 언사도 동원했습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과 긴밀히 소통해 오고 있고 중국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기대를 밝혔지만, 중국 외교부의 표현만 놓고 보면 우리측 기대는 그야말로 '기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함께 후속조치 실행에 만전을 기하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회담 성과에 도취된 채 홍보에만 열을 올리기 보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중국을 다독이고, 대화 복귀 여부를 골똘히 저울질하는 북한의 손목을 슬쩍 잡아끄는 등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결실을 맺도록 하는 후속 작업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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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열린 3개 부처 합동 브리핑…"방미 성과 홍보"
그제(24일) 밤 9시가 넘은 시각,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3개 부처의 합동 브리핑 일정이 기자들에게 공지됐습니다. 어제 오전 정의용 외교부 장관, 문승욱 산업부 장관, 권덕철 복지부 장관이 합동으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브리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들이 브리핑 현장에 참석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처 별로 기자들의 사전 질문을 3개씩만 받아 장관들이 답변하는 다소 일방적인 형식이었습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브리핑 내용 중 한미 간에 이미 합의된 '백신 파트너십' 전문가 그룹 구성을 다음달 초까지 마무리한다는 일정 외에 기존 방미 성과 발표에서 더 나아간 내용은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직후 청와대 내부회의에서 "방미 성과를 경제협력, 백신, 한미동맹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등 분야별로 각 부처에서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애초 예정에 없던 3개 부처 장관들의 합동 브리핑은 이처럼 대통령의 긴급 지시에 따라 서둘러 마련된 대국민 홍보 행사로 보입니다.
비단 합동 브리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그제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정상회담 성과를 놓고 단독 대담을 했고,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CBS 라디오에 출연해 역시 이번 회담의 성과를 알리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미정상회담을 이끈 핵심 주역들이 총출동해 회담의 성과를 전방위적으로 홍보하느라 분주한 모습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SNS를 통해 이번 방문에 대해 "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다"고 자평할 정도로 회담 성과가 컸다는 내부 평가와는 달리 국민들에게는 이런 결과가 잘 전달되지 않아 이번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각에 온도차가 있다는 상황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정의용 장관은 KBS와 대담을 마친 뒤, 이번 정상회담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국민들한테 소개가 됐으면 좋겠는데 언론의 관심사는 다른 것 같다며 안타깝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 정부여당 한미 정상회담 홍보 '올인'…"최상의 성과"
정부 여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어제 취임 후 첫 '총리-부총리 협의회'를 열고 문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공유했습니다. 국무회의에서는 회담 결과를 두고 "유례없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의원총회를 열고 "대통령께서 최상의 방미 성과를 가지고 돌아오셨다"고 거듭 찬사를 보냈습니다.
문 대통령은 오늘(26일) 여야 5당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직접 방미 성과를 설명할 계획입니다.
■ "'한미회담 띄우기', 北 대화 유인에 장애 될 수도"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지만 '다 잘했다' 식의 획일적인 성과 포장에 대해서는 일부 우려 섞인 시각도 나옵니다. 특히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실제로 끌어내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홍보는 북한의 호응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 센터장은 "사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무조건적인 홍보가 북한이나 중국 관점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라면서 "정부가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라고 내세우는 대북공조에 있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오는 데 오히려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과 홍보를 하더라도 다양한 영역의 회담 성과 중 특정 영역을 강조하는 식으로 전략적인 행보를 해야한다"며 "특히 대북 정책에 있어서는 북한이 실제로 대화 테이블까지 나와야 진짜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타이완 문제가 언급된 것을 놓고 "타이완 문제는 순수한 중국 내정"이라며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관련국들은 불장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친 언사도 동원했습니다.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과 긴밀히 소통해 오고 있고 중국도 우리의 입장을 이해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기대를 밝혔지만, 중국 외교부의 표현만 놓고 보면 우리측 기대는 그야말로 '기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관계부처와 함께 후속조치 실행에 만전을 기하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회담 성과에 도취된 채 홍보에만 열을 올리기 보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중국을 다독이고, 대화 복귀 여부를 골똘히 저울질하는 북한의 손목을 슬쩍 잡아끄는 등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결실을 맺도록 하는 후속 작업에 더욱 매진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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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민 기자 freshm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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