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호랑이” 홍범도 장군, 순국 78년 만에 고국 품으로
입력 2021.08.15 (21:06)
수정 2021.08.1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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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홍범도 장군은 '호랑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명사수이자 타고난 싸움꾼이었습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장군이 어떻게 하다 카자흐스탄에 가서 생을 마감했는지 그의 생애를 돌아보겠습니다.
조빛나 기자입니다.
[리포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수습되고, 마지막 제례가 치러집니다.
장군의 이름을 딴 홍범도 거리와 수위로 일했던 고려극장을 돌며 작별 인사도 했습니다.
장군의 유해는 공군 특별수송기에 올라 현지 상공을 3번 선회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미터 큰 키와 팔자 수염, 허리춤에 총을 찬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KBS가 단독 입수한 장군의 생전 영상입니다.
1868년 평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군은 1907년 함경도에서 포수들을 규합해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군을 양성했고, 1920년 봉오동 골짜기에서 수적 열세에도 매복 작전을 통해 일본군 사상자 350여 명이란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드미트리/교수/국립 카자흐스탄 대학 :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전혀 새로운 전략으로 일본군에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장군의 부인은 일제의 고문으로 생을 마쳤고, 큰 아들은 전사, 둘째 아들도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장군은 연해주 집단농장에서 일하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까지 가야 했습니다.
고려극장 수위로 말년을 보내고, 1943년 서거했습니다.
[반병률/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 : "(고향인) 평양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한반도로 귀환하신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고요."]
하늘을 나는 호랑이로 불리며 일본군을 벌벌 떨게 했고,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홍범도 장군.
순국 78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촬영기자:김상하/영상편집:이윤진/자료제공:쇼박스
홍범도 장군은 '호랑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명사수이자 타고난 싸움꾼이었습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장군이 어떻게 하다 카자흐스탄에 가서 생을 마감했는지 그의 생애를 돌아보겠습니다.
조빛나 기자입니다.
[리포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수습되고, 마지막 제례가 치러집니다.
장군의 이름을 딴 홍범도 거리와 수위로 일했던 고려극장을 돌며 작별 인사도 했습니다.
장군의 유해는 공군 특별수송기에 올라 현지 상공을 3번 선회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미터 큰 키와 팔자 수염, 허리춤에 총을 찬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KBS가 단독 입수한 장군의 생전 영상입니다.
1868년 평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군은 1907년 함경도에서 포수들을 규합해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군을 양성했고, 1920년 봉오동 골짜기에서 수적 열세에도 매복 작전을 통해 일본군 사상자 350여 명이란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드미트리/교수/국립 카자흐스탄 대학 :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전혀 새로운 전략으로 일본군에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장군의 부인은 일제의 고문으로 생을 마쳤고, 큰 아들은 전사, 둘째 아들도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장군은 연해주 집단농장에서 일하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까지 가야 했습니다.
고려극장 수위로 말년을 보내고, 1943년 서거했습니다.
[반병률/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 : "(고향인) 평양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한반도로 귀환하신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고요."]
하늘을 나는 호랑이로 불리며 일본군을 벌벌 떨게 했고,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홍범도 장군.
순국 78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촬영기자:김상하/영상편집:이윤진/자료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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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나는 호랑이” 홍범도 장군, 순국 78년 만에 고국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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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1-08-16 08:09:58
[앵커]
홍범도 장군은 '호랑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명사수이자 타고난 싸움꾼이었습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장군이 어떻게 하다 카자흐스탄에 가서 생을 마감했는지 그의 생애를 돌아보겠습니다.
조빛나 기자입니다.
[리포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수습되고, 마지막 제례가 치러집니다.
장군의 이름을 딴 홍범도 거리와 수위로 일했던 고려극장을 돌며 작별 인사도 했습니다.
장군의 유해는 공군 특별수송기에 올라 현지 상공을 3번 선회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미터 큰 키와 팔자 수염, 허리춤에 총을 찬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KBS가 단독 입수한 장군의 생전 영상입니다.
1868년 평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군은 1907년 함경도에서 포수들을 규합해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군을 양성했고, 1920년 봉오동 골짜기에서 수적 열세에도 매복 작전을 통해 일본군 사상자 350여 명이란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드미트리/교수/국립 카자흐스탄 대학 :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전혀 새로운 전략으로 일본군에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장군의 부인은 일제의 고문으로 생을 마쳤고, 큰 아들은 전사, 둘째 아들도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장군은 연해주 집단농장에서 일하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까지 가야 했습니다.
고려극장 수위로 말년을 보내고, 1943년 서거했습니다.
[반병률/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 : "(고향인) 평양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한반도로 귀환하신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고요."]
하늘을 나는 호랑이로 불리며 일본군을 벌벌 떨게 했고,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홍범도 장군.
순국 78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촬영기자:김상하/영상편집:이윤진/자료제공:쇼박스
홍범도 장군은 '호랑이'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명사수이자 타고난 싸움꾼이었습니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장군이 어떻게 하다 카자흐스탄에 가서 생을 마감했는지 그의 생애를 돌아보겠습니다.
조빛나 기자입니다.
[리포트]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수습되고, 마지막 제례가 치러집니다.
장군의 이름을 딴 홍범도 거리와 수위로 일했던 고려극장을 돌며 작별 인사도 했습니다.
장군의 유해는 공군 특별수송기에 올라 현지 상공을 3번 선회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미터 큰 키와 팔자 수염, 허리춤에 총을 찬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KBS가 단독 입수한 장군의 생전 영상입니다.
1868년 평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장군은 1907년 함경도에서 포수들을 규합해 의병을 조직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군을 양성했고, 1920년 봉오동 골짜기에서 수적 열세에도 매복 작전을 통해 일본군 사상자 350여 명이란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드미트리/교수/국립 카자흐스탄 대학 : "전문적인 군사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전혀 새로운 전략으로 일본군에 커다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장군의 부인은 일제의 고문으로 생을 마쳤고, 큰 아들은 전사, 둘째 아들도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장군은 연해주 집단농장에서 일하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까지 가야 했습니다.
고려극장 수위로 말년을 보내고, 1943년 서거했습니다.
[반병률/한국외국어대 사학과 교수 : "(고향인) 평양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한반도로 귀환하신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고요."]
하늘을 나는 호랑이로 불리며 일본군을 벌벌 떨게 했고,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홍범도 장군.
순국 78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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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자:김상하/영상편집:이윤진/자료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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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빛나 기자 hym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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