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잔혹한 진압 은폐…사망자들 폭도로 몰려 했다”
입력 2018.05.15 (21:43)
수정 2018.05.1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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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대표로 검시에 참여했던 원로 목사가 38년 전 상황을 처음으로 증언했습니다.
사망자의 80%를 폭도로 몰려했고, 계엄군의 만행을 집요하게 은폐하려 했다는 내용입니다.
보도에 이성각 기자입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쓰러졌던 광주시민들, 38년 전 군, 검찰과 함께 시민 대표 자격으로 검시에 참여했던 김재일 목사가 아픔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5.18 당시 여성 사망자의 가슴 자상은 유언비어로 치부됐지만 김 목사는 검시 과정에서 대검에 가슴이 찔린 여성의 시신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19살 꽃다운 나이로 숨진 손옥례 씨는 세 발의 관통상 외에도 대검에 찔린 왼쪽 가슴의 상처가 뚜렷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신군부는 여성 희생자의 가슴 자상을 집요하게 숨기려 했습니다.
[김재일 목사/5.18 당시 검시위원 : "유방에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쓰자, 그렇게 써야 될 것 아니냐 그러니까 군에서 나온 의사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신군부는 사망자 가운데 폭도의 비율을 높이라며 특정 수치를 정하고 이에 맞출 것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김재일 목사/5.18 당시 검시위원 : "백 명이면 80명을 폭도로 만들라는 얘기예요. 폭도로...그래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김 목사는 1996년 검찰에 검시 과정에서의 은폐 정황을 담은 진술서를 제출했지만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꾸려질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대표로 검시에 참여했던 원로 목사가 38년 전 상황을 처음으로 증언했습니다.
사망자의 80%를 폭도로 몰려했고, 계엄군의 만행을 집요하게 은폐하려 했다는 내용입니다.
보도에 이성각 기자입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쓰러졌던 광주시민들, 38년 전 군, 검찰과 함께 시민 대표 자격으로 검시에 참여했던 김재일 목사가 아픔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5.18 당시 여성 사망자의 가슴 자상은 유언비어로 치부됐지만 김 목사는 검시 과정에서 대검에 가슴이 찔린 여성의 시신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19살 꽃다운 나이로 숨진 손옥례 씨는 세 발의 관통상 외에도 대검에 찔린 왼쪽 가슴의 상처가 뚜렷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신군부는 여성 희생자의 가슴 자상을 집요하게 숨기려 했습니다.
[김재일 목사/5.18 당시 검시위원 : "유방에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쓰자, 그렇게 써야 될 것 아니냐 그러니까 군에서 나온 의사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신군부는 사망자 가운데 폭도의 비율을 높이라며 특정 수치를 정하고 이에 맞출 것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김재일 목사/5.18 당시 검시위원 : "백 명이면 80명을 폭도로 만들라는 얘기예요. 폭도로...그래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김 목사는 1996년 검찰에 검시 과정에서의 은폐 정황을 담은 진술서를 제출했지만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꾸려질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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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잔혹한 진압 은폐…사망자들 폭도로 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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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8-05-15 22:18:05
[앵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대표로 검시에 참여했던 원로 목사가 38년 전 상황을 처음으로 증언했습니다.
사망자의 80%를 폭도로 몰려했고, 계엄군의 만행을 집요하게 은폐하려 했다는 내용입니다.
보도에 이성각 기자입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쓰러졌던 광주시민들, 38년 전 군, 검찰과 함께 시민 대표 자격으로 검시에 참여했던 김재일 목사가 아픔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5.18 당시 여성 사망자의 가슴 자상은 유언비어로 치부됐지만 김 목사는 검시 과정에서 대검에 가슴이 찔린 여성의 시신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19살 꽃다운 나이로 숨진 손옥례 씨는 세 발의 관통상 외에도 대검에 찔린 왼쪽 가슴의 상처가 뚜렷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신군부는 여성 희생자의 가슴 자상을 집요하게 숨기려 했습니다.
[김재일 목사/5.18 당시 검시위원 : "유방에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쓰자, 그렇게 써야 될 것 아니냐 그러니까 군에서 나온 의사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신군부는 사망자 가운데 폭도의 비율을 높이라며 특정 수치를 정하고 이에 맞출 것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김재일 목사/5.18 당시 검시위원 : "백 명이면 80명을 폭도로 만들라는 얘기예요. 폭도로...그래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김 목사는 1996년 검찰에 검시 과정에서의 은폐 정황을 담은 진술서를 제출했지만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꾸려질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대표로 검시에 참여했던 원로 목사가 38년 전 상황을 처음으로 증언했습니다.
사망자의 80%를 폭도로 몰려했고, 계엄군의 만행을 집요하게 은폐하려 했다는 내용입니다.
보도에 이성각 기자입니다.
[리포트]
1980년 5월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쓰러졌던 광주시민들, 38년 전 군, 검찰과 함께 시민 대표 자격으로 검시에 참여했던 김재일 목사가 아픔의 현장을 찾았습니다.
5.18 당시 여성 사망자의 가슴 자상은 유언비어로 치부됐지만 김 목사는 검시 과정에서 대검에 가슴이 찔린 여성의 시신을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19살 꽃다운 나이로 숨진 손옥례 씨는 세 발의 관통상 외에도 대검에 찔린 왼쪽 가슴의 상처가 뚜렷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신군부는 여성 희생자의 가슴 자상을 집요하게 숨기려 했습니다.
[김재일 목사/5.18 당시 검시위원 : "유방에 상처가 있었다는 것을 쓰자, 그렇게 써야 될 것 아니냐 그러니까 군에서 나온 의사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신군부는 사망자 가운데 폭도의 비율을 높이라며 특정 수치를 정하고 이에 맞출 것을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김재일 목사/5.18 당시 검시위원 : "백 명이면 80명을 폭도로 만들라는 얘기예요. 폭도로...그래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김 목사는 1996년 검찰에 검시 과정에서의 은폐 정황을 담은 진술서를 제출했지만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꾸려질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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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각 기자 dri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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