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백록담 둘레 발밑 19년 만에 뜯어보니…‘쓰레기 천지’

입력 2025.08.22 (15:40) 수정 2025.08.2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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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낮, 해발 1,950m 제주도 한라산 동능 정상. 백록담 주변을 빙 둘러 설치된 너른 나무 데크를 작업자들이 하나둘씩 뜯어내자, 쓰레기가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다 마시고 버린 생수 페트병, 초코바와 과자 포장지, 음료 컵 뚜껑과 티슈, 꾸깃꾸깃한 포일과 나무젓가락, 조리용 핫팩까지 종류도 갖가지. 작업자들이 허리를 숙이고 쪼그려 앉아도 손이 닿지 않는 깊이까지 쓰레기가 처박혀있기도 했습니다.

걷어낸 곳 밑에서 쓰레기가 화수분처럼 이어지기를 수 시간, 자루에 가득 담은 뒤에도 한라산 꼭대기에는 아직 뜯어내지 못한 나무 데크가 더 남아있었습니다.

지난 21일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정상부에서 작업자들이 뜯어낸 나무 데크 아래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제공지난 21일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정상부에서 작업자들이 뜯어낸 나무 데크 아래 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제공

■ 백록담과 탐방로 뒤덮은 쓰레기…세계자연유산 '수난'

세계자연유산 한라산 꼭대기에 꼭꼭 숨어있던 쓰레기장은 19년 만에 처음으로 빛(?)을 봤습니다. 지난 2006년 설치 이후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앞서, 기존 나무 데크를 몽땅 걷어내는 작업을 이날부터 진행하면서입니다.

백록담을 볼 수 있는 한라산 정상부는 탐방객들이 편히 앉아가며 쉴 수 있는 공간 약 1,200㎡를 조성해 뒀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570여㎡ 너비 구간에 나무 데크를 깔았습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측은 "많은 탐방객이 꾸준히 한라산 정상을 찾고 있어, 답압(밟힘) 훼손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나무 데크 덕분에 탐방객들은 옹기종기 앉아 배낭에 싸 온 시원한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한라산 정상 표지석과 백록담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고 돌아갑니다.

문제는 이렇게 먹고 마신 쓰레기를 되가져가는 게 아닌, 나무 데크와 바위 사이 틈과 같은 공간에 밀어 넣어 버리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시나브로 버려진 쓰레기가 19년간 몰래 쌓여, 높고 거대한 쓰레기장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난 21일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정상부에 설치된 나무 데크를 걷어내자,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제공지난 21일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정상부에 설치된 나무 데크를 걷어내자,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제공

■ "생태계에 치명적"…'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 운동까지

한라산이 쓰레기와 여러 불법 행위로 몸살을 앓는 문제는 잊을 만하면 지역 언론에 오르내리는 단골 뉴스입니다. 매번 '잃어버린 시민 의식', '관리 부실' 등이 지적되지만 그때뿐. 관리 당국이 한 번 나갈 때마다 한라산 곳곳에서 수거해오는 쓰레기나 각종 폐기물은 매번 수 톤에 달합니다.

한라산에서 불법으로 야영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등 몰지각한 행태도 종종 적발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는 탐방객들이 화장실이나 땅에 라면 국물을 버리는 탓에 생태계에 문제가 생긴다며 '라면 국물 남기지 않기 운동'까지 벌일 정도입니다.

관리소는 오는 10월 말까지 나무 데크를 세 구간으로 나눠 정비 작업을 진행하면서, 쓰레기도 수거할 계획입니다. 관리소 관계자는 "일단 어제 하루 작업을 한 것이라 아직 정확한 수거량은 파악되지 않았다"라며 "쓰레기는 정비 공사를 위해 계약한 헬기를 이용해 산 아래로 실어 나를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랑이자 세계의 보물인 세계자연유산 한라산을 찾은 국내외 탐방객 수는 지난해 93만여 명.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되가져가서, 정해진 장소에서 깨끗하게 처리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기대하기란 아직 멀기만 한 걸까요.

(그래픽 : 이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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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5-08-22 16: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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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낮, 해발 1,950m 제주도 한라산 동능 정상. 백록담 주변을 빙 둘러 설치된 너른 나무 데크를 작업자들이 하나둘씩 뜯어내자, 쓰레기가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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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측은 "많은 탐방객이 꾸준히 한라산 정상을 찾고 있어, 답압(밟힘) 훼손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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