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같은 고구마인데”…‘그 버거’가 농가에 남긴 것

입력 2025.08.16 (07:00) 수정 2025.08.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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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온다 하셔서 일부러 좀 남겨 놨는데… 바빠요. 여기도 얼른 끝내야 해요."

전북 익산에서 28년째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는 서정중 씨의 8월은 분주합니다.

밤고구마 수확이 본격화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서 씨가 키우는 진율미 밤고구마는 조생종으로, 일반 고구마보다 수확이 한 달 이상 이른 편입니다.

30명에 가까운 일꾼들이 하루 10시간 안팎 일하며 바지런히 고구마를 캐도 일정이 빠듯합니다.

갓 캔 고구마 뒤로 일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태국,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이다.갓 캔 고구마 뒤로 일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태국,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올해는 특히 더 바빠졌습니다. 익산 고구마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겁니다.

"제가 시장으로 출하를 하니까, 원래도 시장에서 구매하신 분들이 제 고구마 상자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해서 문의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었습니다. 근데 금년에는 훨씬 늘었죠. 배로. 귀찮을 정도로 전화가 옵니다. 고구마 언제 택배로 받을 수 있냐고."

베테랑 농부의 표정에서 설렘과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전북 익산시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는 서정중 씨가 지난 8일 KBS와 인터뷰하고 있다.전북 익산시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는 서정중 씨가 지난 8일 KBS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내가 키운 고구마가 세계적 기업의 식재료로…그 기쁨 이루 말로 못 해"

지난달 10일, 한국맥도날드는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를 한정판으로 출시했습니다.

고구마와 모짜렐라 치즈로 만든 크로켓이 버거 안에 들어갔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익산 고구마가 주재료였죠.

지난해 서 씨가 키워 지역 농협에 납품한 고구마를 비롯해, 익산 고구마 총 200톤이 이 버거를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의 핵심 재료는 익산 고구마가 들어간 바삭한 크로켓이다.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의 핵심 재료는 익산 고구마가 들어간 바삭한 크로켓이다.

익산 고구마 버거는 출시 9일 만에 100만 개가 팔려나갔습니다. 버거 판매 기간(7월 10일~8월 10일) 동안, 익산 현지에서도 그 인기를 실감했다고 합니다.

박수진 익산 삼기농협 상무는 "햄버거가 막 나올 때 문의가 많았는데, 그 시기엔 사실 저장돼 있거나 수확한 고구마가 없을 때였다"면서 "이제 고구마가 나오기 시작하니 공급업체를 비롯해 전화가 많이 온다"고 전했습니다.

익산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에는 "자랑스럽다! 익산 고구마! 맥도날드 버거로 금의환향!"이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 8일 전북 익산시 영등동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 건물에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 출시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지난 8일 전북 익산시 영등동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 건물에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 출시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30년 가까이 고구마 농사를 지은 서 씨에게도, 이번 일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농사짓는 일에서 최고의, 큰 의미를 가진 그런 부분이었죠. 그동안 저희는 그냥 도매 시장에 납품만 했지 그런 대기업에서 재료로 저희 고구마를 쓴다는 건 정말 큰일 아닙니까? 엄청 자부심도 느낄 수 있고… 아, 내 고구마가 저렇게 세계적인 기업에 재료로 쓰인다니. 그런 건 뭐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 기쁨은."

■ 농가·지역과 '상생' 내세운 버거…실제 어떤 도움 됐나

지역 농산물을 주인공으로 한 버거가 인기를 끈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는 맥도날드가 2021년부터 해마다 진행 중인 '한국의 맛'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메뉴였습니다.

맥도날드에 따르면, '한국의 맛' 프로젝트는 고품질의 국내산 식재료를 발굴해 이를 활용한 다양한 신메뉴를 개발하는 '로컬 소싱'(상품을 생산할 때 국내에서 만들어진 물자를 활용하는 전략) 프로젝트입니다.

지역 농가와의 동반 성장, 지역 경제 활성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맥도날드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경남 창녕 마늘, 전남 보성 녹찻잎, 전남 진도 대파, 경남 진주 고추를 재료로 쓴 버거 메뉴를 기간 한정 메뉴로 내놨습니다.


농가와의 상생을 기치로 내세운 만큼, 실제 농가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가 중요할 텐데요.

임팩트(사회적 가치) 측정 전문 기업 '트리플라잇'은 맥도날드 의뢰를 받아, '한국의 맛' 프로젝트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실제 각 지역에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산출했습니다.

각종 데이터와 통계 정보를 수집하고 화폐가치 측정 산식을 정하는 작업에 더해, 맥도날드와 협업한 4개 시·군을 모두 찾아가 지자체와 단위 농협을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임팩트 측정 전문기업 '트리플라잇(TripleLight)'의 맥도날드 '한국의 맛' 사업 임팩트 측정 컨설팅 보고서 일부분. 어떤 절차를 거쳐 사회적 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임팩트 측정 전문기업 '트리플라잇(TripleLight)'의 맥도날드 '한국의 맛' 사업 임팩트 측정 컨설팅 보고서 일부분. 어떤 절차를 거쳐 사회적 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측정 결과, 우선 지역 농가가 맥도날드 납품으로 추가로 올린 소득은 4년 동안 총 18억 원 정도였습니다.

지역별로는 진도 14억 5천만 원, 창녕 3억 9천만 원, 진주 2천만 원으로 측정됐고, 보성은 농가의 소득 증가분이 따로 없었습니다.

기간 한정 메뉴인 데다 버거에 들어가는 양 역시 많지 않다 보니, 맥도날드가 매입하는 농산물 규모가 크지는 않았던 겁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서로 시기가 안 맞아 농산물 가격이 저렴할 때 물량을 가져가셔서 판매액이 더 적었다"고 말했습니다.

맥도날드 '대파크림크로켓버거' 출시에 협업한 전남 진도군의 대파밭이 산 아래로 펼쳐져 있다. (화면 제공: 한국맥도날드)맥도날드 '대파크림크로켓버거' 출시에 협업한 전남 진도군의 대파밭이 산 아래로 펼쳐져 있다. (화면 제공: 한국맥도날드)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한 부문은 '지자체 인지도 향상'이었습니다.

버거 출시와 광고 시작 전후로 해당 지역과 지역 농산물의 언급량이 소셜미디어에서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 소셜미디어 콘텐츠의 텍스트를 분석해 맥도날드 기여도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지자체 인지도 향상'의 화폐 가치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창녕 401억 원, 진도 66억 원, 진주 54억 원, 보성 19억 원어치의 지자체 인지도 향상 성과가 난 것으로 산출됐습니다.

합치면 567억 원 규모인데, 이는 4개 시·군이 지출하는 평균 언론·홍보 비용의 약 6배에 달합니다.

창녕이 다른 지자체에 비해 성과가 압도적으로 큰 것은, 창녕 갈릭 버거가 2021년부터 2024년 사이 네 차례나 출시돼 일종의 '축적의 힘'이 발휘된 덕택으로 분석됐습니다.

이은화 트리플라잇 대표는 "버거 출시 이후 4개 지역 특산물에 대한 소셜미디어 언급량이 5배, 10만 건 늘었다"면서 "지역 단위의 홍보는 예산과 네트워크에 한계가 있는데, 국내 매장이 400개가 넘는 식품 글로벌 대기업이 특정 지역을 뽑아 알려주는 건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출시된 맥도날드 '진주 고추크림치즈버거' 광고의 한 장면. 진주에서 고추를 키우는 농민들이 직접 모델로 등장한다.지난해 출시된 맥도날드 '진주 고추크림치즈버거' 광고의 한 장면. 진주에서 고추를 키우는 농민들이 직접 모델로 등장한다.

각 지자체에서도 '한국의 맛' 프로젝트 이후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김남엽 경남 창녕군 농산물유통팀장은 "창녕 마늘도 그렇지만, 창녕이라는 지자체의 이름 자체를 알린 효과도 매우 컸던 거 같다"면서 "창녕이 어디 붙어 있는 데인지, 어떤 곳인지 와보고 싶다는 등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을 정말 많이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 "창녕에서 생산하는 다른 농산물의 판매량과 인지도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했습니다.

박현 전남 진도군 농수산유통기획팀장은 "맥도날드와의 협업으로 '진도 대파'라는 브랜드 하나는 확실하게 잡았다"면서 "옛날엔 '진도 대파'가 겨울 눈 속에서도 자라는 대파라고 해서 전국에서 알아줬는데, 이번에 그 명성을 좀 되찾은 거 같아서 뿌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신안 대파' '의성 마늘'처럼 가장 잘 알려진 주산지를 제외하고 비교적 덜 알려진 우수한 지역의 농산물을 발굴한다는 프로젝트의 원칙, 현지 오디션에서 뽑힌 농민들이 등장하는 광고 역시 지자체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밖에 농산물 폐기 비용 절감, 지역 농산물 매출 증대, 농가 역량 향상 등 다른 부문까지 모두 합치면 '한국의 맛' 프로젝트가 4년 동안 낸 사회적 성과의 화폐 가치는 총 617억 원으로 산출됐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맛' 프로젝트 진행에 들어간 사업비(광고비·농산물 구입비) 146억 원 대비 4.2배 규모의 성과를 낸 겁니다.

이은화 트리플라잇 대표는 "이번 작업의 측정 대상 기간이 4년으로 길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라면서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봐야 '한국의 맛'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어느 기간까지 유의미하게 꾸준히 관련 성과가 올라가느냐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반짝' 이벤트성 판매는 아쉬워…K푸드 열풍 탔으면"

수치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이은화 트리플라잇 공동대표는 "지역 담당자분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딱 하나 아쉬운 점을 꼽으셨다"면서 "버거가 한두 달 동안만 짧게 판매된다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버거 판매 시기가 주로 여름철로 정해지다 보니 농작물 품질이 가장 좋을 때 납품하는 데 한계가 있고, 시장의 관심이 사그라들면 다른 부가가치를 내는 기회로까지 이어지기도 힘들다는 얘깁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버거 출시가 일회성이라 보여주기식이라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라며 "TV 광고에 버거가 나오고 할 때는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제품 판매가 끝나고 조용해지니까 협업 문의도 뜸해진다. 제안은 많았지만 실제 이루어진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맥도날드에선 리뉴얼해서 다시 출시할 거라고도 이야기하셨지만, 그것도 기업 내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토로했습니다.

익산에서 만난 서정중 씨 역시 "연중은 아니더라도 1년에 6~8개월은 고구마를 출하해야 하는데, 메뉴가 너무 한시적이라는 게 아쉽다"면서 "평이 아주 좋기 때문에 좀 더 장기적으로 출시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북 익산 고구마 재배농 서정중 씨의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상품 포장 전 고구마를 다듬고 있다.전북 익산 고구마 재배농 서정중 씨의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상품 포장 전 고구마를 다듬고 있다.

맥도날드 측도 이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한국맥도날드 관계자는 "상시 메뉴의 확대를 고려할 때는 원재료의 안정적 수급, 고객 선호도와 트렌드, 다른 메뉴와의 조화 등이 폭넓게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한국맥도날드의 인기 제품인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와 '불고기 버거'와 같이 한국에서 개발한 메뉴들이 상시 메뉴화된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면서 "한국의 맛 시리즈 버거 또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역에선 상생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맥도날드가 '한국의 맛' 메뉴 수출에도 적극 나섰으면 한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요즘 K푸드가 열풍이라고 하는데, 맥도날드 매장이 있는 다른 나라에도 저희 한국 농산물을 알리는 역할을 조금만 더 해주시면 참 좋을 거 같다"면서 "농가나 지역에서도 농산물 원물보다는 대기업과 손잡고 소스 등으로 가공해서 판매하는 게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외시장을 무대로도 대기업과 농가·지역의 협업이 이어진다면, 20년 가까이 연평균 1천만 원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내 농가의 '농업 소득'을 올리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맥도날드 관계자는 "'한국의 맛' 프로젝트는 한국 지역 농가와의 상생을 염두하고 출범했으며, 해외 지사와의 협업을 우선적인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면서 "다만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프로젝트가 글로벌 본사와 해외 지사에도 입소문이 나면서, 아시아 지역 국가를 중심으로 레시피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실제 한국맥도날드의 메뉴였던 '한라봉 칠러'와 '한입 초코 츄러스'가 맥도날드 홍콩지사에 수출된 사례가 있다"면서 "추후 '한국의 맛' 메뉴의 수출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의미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홍콩 맥도날드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주한라봉 칠러' 광고 (출처: 맥도날드) 홍콩 맥도날드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주한라봉 칠러' 광고 (출처: 맥도날드)

지역 농가와 협업해 상품을 개발하는 식품·유통 기업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은화 대표는 "일반적으로 지역과 연계한 기업들의 사회공헌 사업은 2~3년 뒤 빠지는(끝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긴 호흡으로 상생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시도해 보고 때로는 실패도 해보면서,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그래픽: 조은수, 박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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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자식같은 고구마인데”…‘그 버거’가 농가에 남긴 것
    • 입력 2025-08-16 07:00:48
    • 수정2025-08-16 1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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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온다 하셔서 일부러 좀 남겨 놨는데… 바빠요. 여기도 얼른 끝내야 해요."

전북 익산에서 28년째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는 서정중 씨의 8월은 분주합니다.

밤고구마 수확이 본격화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서 씨가 키우는 진율미 밤고구마는 조생종으로, 일반 고구마보다 수확이 한 달 이상 이른 편입니다.

30명에 가까운 일꾼들이 하루 10시간 안팎 일하며 바지런히 고구마를 캐도 일정이 빠듯합니다.

갓 캔 고구마 뒤로 일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태국,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올해는 특히 더 바빠졌습니다. 익산 고구마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겁니다.

"제가 시장으로 출하를 하니까, 원래도 시장에서 구매하신 분들이 제 고구마 상자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해서 문의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었습니다. 근데 금년에는 훨씬 늘었죠. 배로. 귀찮을 정도로 전화가 옵니다. 고구마 언제 택배로 받을 수 있냐고."

베테랑 농부의 표정에서 설렘과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전북 익산시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고 있는 서정중 씨가 지난 8일 KBS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내가 키운 고구마가 세계적 기업의 식재료로…그 기쁨 이루 말로 못 해"

지난달 10일, 한국맥도날드는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를 한정판으로 출시했습니다.

고구마와 모짜렐라 치즈로 만든 크로켓이 버거 안에 들어갔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익산 고구마가 주재료였죠.

지난해 서 씨가 키워 지역 농협에 납품한 고구마를 비롯해, 익산 고구마 총 200톤이 이 버거를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의 핵심 재료는 익산 고구마가 들어간 바삭한 크로켓이다.
익산 고구마 버거는 출시 9일 만에 100만 개가 팔려나갔습니다. 버거 판매 기간(7월 10일~8월 10일) 동안, 익산 현지에서도 그 인기를 실감했다고 합니다.

박수진 익산 삼기농협 상무는 "햄버거가 막 나올 때 문의가 많았는데, 그 시기엔 사실 저장돼 있거나 수확한 고구마가 없을 때였다"면서 "이제 고구마가 나오기 시작하니 공급업체를 비롯해 전화가 많이 온다"고 전했습니다.

익산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에는 "자랑스럽다! 익산 고구마! 맥도날드 버거로 금의환향!"이라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 8일 전북 익산시 영등동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 건물에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 출시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30년 가까이 고구마 농사를 지은 서 씨에게도, 이번 일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농사짓는 일에서 최고의, 큰 의미를 가진 그런 부분이었죠. 그동안 저희는 그냥 도매 시장에 납품만 했지 그런 대기업에서 재료로 저희 고구마를 쓴다는 건 정말 큰일 아닙니까? 엄청 자부심도 느낄 수 있고… 아, 내 고구마가 저렇게 세계적인 기업에 재료로 쓰인다니. 그런 건 뭐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 기쁨은."

■ 농가·지역과 '상생' 내세운 버거…실제 어떤 도움 됐나

지역 농산물을 주인공으로 한 버거가 인기를 끈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익산 고구마 모짜렐라 버거'는 맥도날드가 2021년부터 해마다 진행 중인 '한국의 맛'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메뉴였습니다.

맥도날드에 따르면, '한국의 맛' 프로젝트는 고품질의 국내산 식재료를 발굴해 이를 활용한 다양한 신메뉴를 개발하는 '로컬 소싱'(상품을 생산할 때 국내에서 만들어진 물자를 활용하는 전략) 프로젝트입니다.

지역 농가와의 동반 성장, 지역 경제 활성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맥도날드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경남 창녕 마늘, 전남 보성 녹찻잎, 전남 진도 대파, 경남 진주 고추를 재료로 쓴 버거 메뉴를 기간 한정 메뉴로 내놨습니다.


농가와의 상생을 기치로 내세운 만큼, 실제 농가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가 중요할 텐데요.

임팩트(사회적 가치) 측정 전문 기업 '트리플라잇'은 맥도날드 의뢰를 받아, '한국의 맛' 프로젝트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실제 각 지역에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산출했습니다.

각종 데이터와 통계 정보를 수집하고 화폐가치 측정 산식을 정하는 작업에 더해, 맥도날드와 협업한 4개 시·군을 모두 찾아가 지자체와 단위 농협을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임팩트 측정 전문기업 '트리플라잇(TripleLight)'의 맥도날드 '한국의 맛' 사업 임팩트 측정 컨설팅 보고서 일부분. 어떤 절차를 거쳐 사회적 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측정 결과, 우선 지역 농가가 맥도날드 납품으로 추가로 올린 소득은 4년 동안 총 18억 원 정도였습니다.

지역별로는 진도 14억 5천만 원, 창녕 3억 9천만 원, 진주 2천만 원으로 측정됐고, 보성은 농가의 소득 증가분이 따로 없었습니다.

기간 한정 메뉴인 데다 버거에 들어가는 양 역시 많지 않다 보니, 맥도날드가 매입하는 농산물 규모가 크지는 않았던 겁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서로 시기가 안 맞아 농산물 가격이 저렴할 때 물량을 가져가셔서 판매액이 더 적었다"고 말했습니다.

맥도날드 '대파크림크로켓버거' 출시에 협업한 전남 진도군의 대파밭이 산 아래로 펼쳐져 있다. (화면 제공: 한국맥도날드)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한 부문은 '지자체 인지도 향상'이었습니다.

버거 출시와 광고 시작 전후로 해당 지역과 지역 농산물의 언급량이 소셜미디어에서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기초 자료로 활용하고, 소셜미디어 콘텐츠의 텍스트를 분석해 맥도날드 기여도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지자체 인지도 향상'의 화폐 가치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창녕 401억 원, 진도 66억 원, 진주 54억 원, 보성 19억 원어치의 지자체 인지도 향상 성과가 난 것으로 산출됐습니다.

합치면 567억 원 규모인데, 이는 4개 시·군이 지출하는 평균 언론·홍보 비용의 약 6배에 달합니다.

창녕이 다른 지자체에 비해 성과가 압도적으로 큰 것은, 창녕 갈릭 버거가 2021년부터 2024년 사이 네 차례나 출시돼 일종의 '축적의 힘'이 발휘된 덕택으로 분석됐습니다.

이은화 트리플라잇 대표는 "버거 출시 이후 4개 지역 특산물에 대한 소셜미디어 언급량이 5배, 10만 건 늘었다"면서 "지역 단위의 홍보는 예산과 네트워크에 한계가 있는데, 국내 매장이 400개가 넘는 식품 글로벌 대기업이 특정 지역을 뽑아 알려주는 건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출시된 맥도날드 '진주 고추크림치즈버거' 광고의 한 장면. 진주에서 고추를 키우는 농민들이 직접 모델로 등장한다.
각 지자체에서도 '한국의 맛' 프로젝트 이후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김남엽 경남 창녕군 농산물유통팀장은 "창녕 마늘도 그렇지만, 창녕이라는 지자체의 이름 자체를 알린 효과도 매우 컸던 거 같다"면서 "창녕이 어디 붙어 있는 데인지, 어떤 곳인지 와보고 싶다는 등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난 것을 정말 많이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 "창녕에서 생산하는 다른 농산물의 판매량과 인지도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했습니다.

박현 전남 진도군 농수산유통기획팀장은 "맥도날드와의 협업으로 '진도 대파'라는 브랜드 하나는 확실하게 잡았다"면서 "옛날엔 '진도 대파'가 겨울 눈 속에서도 자라는 대파라고 해서 전국에서 알아줬는데, 이번에 그 명성을 좀 되찾은 거 같아서 뿌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신안 대파' '의성 마늘'처럼 가장 잘 알려진 주산지를 제외하고 비교적 덜 알려진 우수한 지역의 농산물을 발굴한다는 프로젝트의 원칙, 현지 오디션에서 뽑힌 농민들이 등장하는 광고 역시 지자체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그밖에 농산물 폐기 비용 절감, 지역 농산물 매출 증대, 농가 역량 향상 등 다른 부문까지 모두 합치면 '한국의 맛' 프로젝트가 4년 동안 낸 사회적 성과의 화폐 가치는 총 617억 원으로 산출됐습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맛' 프로젝트 진행에 들어간 사업비(광고비·농산물 구입비) 146억 원 대비 4.2배 규모의 성과를 낸 겁니다.

이은화 트리플라잇 대표는 "이번 작업의 측정 대상 기간이 4년으로 길지 않았다는 점은 한계"라면서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봐야 '한국의 맛'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어느 기간까지 유의미하게 꾸준히 관련 성과가 올라가느냐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반짝' 이벤트성 판매는 아쉬워…K푸드 열풍 탔으면"

수치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이은화 트리플라잇 공동대표는 "지역 담당자분들을 만나보면 하나같이 딱 하나 아쉬운 점을 꼽으셨다"면서 "버거가 한두 달 동안만 짧게 판매된다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버거 판매 시기가 주로 여름철로 정해지다 보니 농작물 품질이 가장 좋을 때 납품하는 데 한계가 있고, 시장의 관심이 사그라들면 다른 부가가치를 내는 기회로까지 이어지기도 힘들다는 얘깁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버거 출시가 일회성이라 보여주기식이라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라며 "TV 광고에 버거가 나오고 할 때는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는데 제품 판매가 끝나고 조용해지니까 협업 문의도 뜸해진다. 제안은 많았지만 실제 이루어진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맥도날드에선 리뉴얼해서 다시 출시할 거라고도 이야기하셨지만, 그것도 기업 내부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토로했습니다.

익산에서 만난 서정중 씨 역시 "연중은 아니더라도 1년에 6~8개월은 고구마를 출하해야 하는데, 메뉴가 너무 한시적이라는 게 아쉽다"면서 "평이 아주 좋기 때문에 좀 더 장기적으로 출시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북 익산 고구마 재배농 서정중 씨의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상품 포장 전 고구마를 다듬고 있다.
맥도날드 측도 이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한국맥도날드 관계자는 "상시 메뉴의 확대를 고려할 때는 원재료의 안정적 수급, 고객 선호도와 트렌드, 다른 메뉴와의 조화 등이 폭넓게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한국맥도날드의 인기 제품인 '맥스파이시 상하이 버거'와 '불고기 버거'와 같이 한국에서 개발한 메뉴들이 상시 메뉴화된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면서 "한국의 맛 시리즈 버거 또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역에선 상생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맥도날드가 '한국의 맛' 메뉴 수출에도 적극 나섰으면 한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요즘 K푸드가 열풍이라고 하는데, 맥도날드 매장이 있는 다른 나라에도 저희 한국 농산물을 알리는 역할을 조금만 더 해주시면 참 좋을 거 같다"면서 "농가나 지역에서도 농산물 원물보다는 대기업과 손잡고 소스 등으로 가공해서 판매하는 게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해외시장을 무대로도 대기업과 농가·지역의 협업이 이어진다면, 20년 가까이 연평균 1천만 원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내 농가의 '농업 소득'을 올리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도 나옵니다.

이에 대해 맥도날드 관계자는 "'한국의 맛' 프로젝트는 한국 지역 농가와의 상생을 염두하고 출범했으며, 해외 지사와의 협업을 우선적인 고려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면서 "다만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 프로젝트가 글로벌 본사와 해외 지사에도 입소문이 나면서, 아시아 지역 국가를 중심으로 레시피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실제 한국맥도날드의 메뉴였던 '한라봉 칠러'와 '한입 초코 츄러스'가 맥도날드 홍콩지사에 수출된 사례가 있다"면서 "추후 '한국의 맛' 메뉴의 수출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의미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홍콩 맥도날드에서 판매되고 있는 '제주한라봉 칠러' 광고 (출처: 맥도날드)
지역 농가와 협업해 상품을 개발하는 식품·유통 기업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은화 대표는 "일반적으로 지역과 연계한 기업들의 사회공헌 사업은 2~3년 뒤 빠지는(끝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긴 호흡으로 상생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함께 시도해 보고 때로는 실패도 해보면서, 더 좋은 방법을 고민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그래픽: 조은수, 박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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