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안 반기는 공휴일 축소…‘국가 마비’ 운동까지?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5.07.25 (08:01)
수정 2025.07.25 (08: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최근 국가 부채를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겠다며, ‘법정 공휴일 이틀 폐지’ 방안을 내놨습니다.
연중 총 11일인 법정 공휴일 가운데 부활절 월요일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5월 8일이 폐지 대상으로 거론됩니다. 부활절 휴일은 더 이상 종교적 의미가 없고, 공휴일이 사흘(노동절과 승전 기념일, 예수승천대축일)이나 집중된 5월에서 쉬는 날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게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의 설명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통해 총 42억 유로, 우리 돈 약 6조 7천억 원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 GDP의 5.8%입니다.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008년 그리스처럼 재정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우려입니다.
■ “중산층·노동자만 더 일해서 세금 내라니”
정부의 ‘공휴일 줄이기’에 야권은 극우, 극좌 할 것 없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부활절 월요일과 5월 8일 공휴일 폐지는 프랑스의 역사와 정체성,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연합 RN의 장 필리프 탕기 의원도 “마크롱 정권이 7년의 집권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일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공휴일 축소가 국가의 예산 절감과는 상관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2차 대전이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끝난 날인 ‘5월 8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한다는 데 대한 반발이 거셉니다.
녹색당 마린 통들리에 대표는 “나치즘에 대한 승리 기념일을 더 이상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데, 이 제안을 정확히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말했습니다.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 LFI 소속 토마 포르트 의원은 “완전한 스캔들”이라며,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극소수 부자를 구제하는 방안”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급여는 그대로인데 이틀 더 일하게 되니, 노동계도 들고일어났습니다.
강성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의 소피 비네 사무총장은 “우리는 적게 벌면서 더 일하게 될 것이고, 사회적 권리는 박탈된 것”이라며 이는 “세 배의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관련해 녹색당 상드린 루소 의원은 공휴일 이틀 폐지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라며 예산 절감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기업도 ‘뜨뜻미지근’ 반응…왜?
기업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지난 21일 정부와 기업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기업 협의회’에서 고용주 단체들은 기업이 부담해야 할 기여금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공휴일 이틀 폐지로 기업들이 얻게 될 이득의 대가로, 임금 총액의 0.6%를 정부에 기여금으로 내도록 하는 것을 구상 중입니다.
지역 기업 대표들은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합리적일 수 있지만, 생산성이 둔화하는 기업은 0.6% 기여금이 추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기업은 이틀 추가 근무 대가로 기여금을 내야 한다면 결국 돌아오는 이익도 없다고 항변합니다. 또 이 조치가 호텔과 식당, 지방 정부 등 관광 수익과 직결되는 곳에는 매우 불리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 프랑스 공휴일, 유럽 평균보다 많을까?
여름휴가를 약 한 달 정도 길게 가다 보니 프랑스 하면 ‘일 안 하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프랑스는 유럽에서 법정 공휴일도 많은 축에 속할까요?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 앵포 조사를 보면, 유럽연합 EU 회원국 중 공휴일이 가장 많은 나라는 키프로스로 15일입니다. 2위는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스페인 등 5개국으로, 공휴일이 14일입니다. 오스트리아, 핀란드, 포르투갈, 체코 등이 13일로 그 뒤를 따릅니다. 슬로베니아는 12일입니다.
프랑스는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스웨덴 등과 함께 11일의 공휴일을 갖습니다. 벨기에와 아일랜드는 10일,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공휴일이 가장 적은 9일입니다. 연방 국가인 스위스는 주(州)별로 8일에서 15일까지 공휴일 수가 다르고, 스페인도 지방에 따라 다릅니다.
유럽에서 국가 재정상의 이유로 공휴일을 축소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슬로바키아는 과거 법정 공휴일이 14일이었지만, 지난해 ‘벨벳 혁명’ 기념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했습니다. 또 2023년 덴마크는 부활절 다음 네 번째 금요일에 기념하는 ‘대기도의 날’을 폐지해 군사비 지출 증가에 자금을 지원했고, 이는 야당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공휴일 폐지로 프랑스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사이 의견도 엇갈립니다.
예산 담당 장관인 아멜리 드 몽샬랭은 “365일 중 이틀은 약 0.5%의 추가 활동에 해당한다”며, 이에 비례한 세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확언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의 의견은 다르다고 일간 ‘르 몽드’는 설명합니다. 국립통계경제연구소 분석 결과 “공휴일 하루는 GDP의 0.06% 포인트, 즉 약 16억 유로로 산출되고, 이틀은 GDP의 0.12%에 해당하므로 이는 정부가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르 몽드’는 분석했습니다.
■ 프랑스인 4명 중 3명 “반대”…“국가 마비시키자”
국민들은 당연히 반발합니다. 프랑스 여론조사 업체인 엘라베연구소가 현지 매체인 BFMTV 의뢰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프랑스 국민 4명 중 3명이 공휴일 이틀 폐지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대다수(65%)는 프랑스 부채 문제 해결의 시급성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공휴일 축소에는 반대했습니다. 반대 의견은 직장인(79%)뿐 아니라 퇴직자(71%) 양쪽 모두에서 높게 나왔습니다.
정부 제안에 반발해 프랑스 전체를 마비시키자는 운동까지 확산하고 있습니다.
최근 X(옛 트위터)에는 ‘전체 마비’라는 계정이 만들어져 9월 10일부터 프랑스를 마비시키자고 촉구하는 글이 퍼지고 있습니다.
간호사와 교사, 실업자, 주부, 젊은 취약 계층 등 약 20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이 불공정한 계획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타격하고 우리 필수 서비스를 파괴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대형 마트 불매 운동을 벌이면서 “휴가를 내고 근무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의도적으로 늦추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대형 은행이 투기와 사회 파괴 정책에 공모했다며 이곳에서 돈을 인출하자고도 제안합니다. 2018년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한 사람 일부도 이 단체의 주장을 SNS에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바이루 총리가 공휴일 폐지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오는 9월 의회에서 불신임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과 바이루 총리의 중도파 연립정부가 의회 다수를 차지하지 못해 불신임의 벽을 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크롱 정부는 또 한 번 위기에 놓였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누구도 안 반기는 공휴일 축소…‘국가 마비’ 운동까지? [특파원 리포트]
-
- 입력 2025-07-25 08:01:25
- 수정2025-07-25 08:01:35

프랑스 정부가 최근 국가 부채를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겠다며, ‘법정 공휴일 이틀 폐지’ 방안을 내놨습니다.
연중 총 11일인 법정 공휴일 가운데 부활절 월요일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인 5월 8일이 폐지 대상으로 거론됩니다. 부활절 휴일은 더 이상 종교적 의미가 없고, 공휴일이 사흘(노동절과 승전 기념일, 예수승천대축일)이나 집중된 5월에서 쉬는 날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게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의 설명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를 통해 총 42억 유로, 우리 돈 약 6조 7천억 원의 세수가 확보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 GDP의 5.8%입니다.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2008년 그리스처럼 재정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우려입니다.
■ “중산층·노동자만 더 일해서 세금 내라니”
정부의 ‘공휴일 줄이기’에 야권은 극우, 극좌 할 것 없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 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부활절 월요일과 5월 8일 공휴일 폐지는 프랑스의 역사와 정체성,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연합 RN의 장 필리프 탕기 의원도 “마크롱 정권이 7년의 집권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일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공휴일 축소가 국가의 예산 절감과는 상관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2차 대전이 유럽에서 공식적으로 끝난 날인 ‘5월 8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한다는 데 대한 반발이 거셉니다.
녹색당 마린 통들리에 대표는 “나치즘에 대한 승리 기념일을 더 이상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데, 이 제안을 정확히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말했습니다.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 LFI 소속 토마 포르트 의원은 “완전한 스캔들”이라며, “많은 사람을 희생시켜 극소수 부자를 구제하는 방안”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급여는 그대로인데 이틀 더 일하게 되니, 노동계도 들고일어났습니다.
강성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의 소피 비네 사무총장은 “우리는 적게 벌면서 더 일하게 될 것이고, 사회적 권리는 박탈된 것”이라며 이는 “세 배의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관련해 녹색당 상드린 루소 의원은 공휴일 이틀 폐지는 “가장 열심히 일하는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라며 예산 절감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기업도 ‘뜨뜻미지근’ 반응…왜?
기업도 반기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지난 21일 정부와 기업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기업 협의회’에서 고용주 단체들은 기업이 부담해야 할 기여금에 대해 우려를 표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공휴일 이틀 폐지로 기업들이 얻게 될 이득의 대가로, 임금 총액의 0.6%를 정부에 기여금으로 내도록 하는 것을 구상 중입니다.
지역 기업 대표들은 규모가 큰 기업의 경우 합리적일 수 있지만, 생산성이 둔화하는 기업은 0.6% 기여금이 추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기업은 이틀 추가 근무 대가로 기여금을 내야 한다면 결국 돌아오는 이익도 없다고 항변합니다. 또 이 조치가 호텔과 식당, 지방 정부 등 관광 수익과 직결되는 곳에는 매우 불리하다고도 지적했습니다.
■ 프랑스 공휴일, 유럽 평균보다 많을까?
여름휴가를 약 한 달 정도 길게 가다 보니 프랑스 하면 ‘일 안 하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프랑스는 유럽에서 법정 공휴일도 많은 축에 속할까요?
프랑스 공영방송인 프랑스 앵포 조사를 보면, 유럽연합 EU 회원국 중 공휴일이 가장 많은 나라는 키프로스로 15일입니다. 2위는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스페인 등 5개국으로, 공휴일이 14일입니다. 오스트리아, 핀란드, 포르투갈, 체코 등이 13일로 그 뒤를 따릅니다. 슬로베니아는 12일입니다.
프랑스는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스웨덴 등과 함께 11일의 공휴일을 갖습니다. 벨기에와 아일랜드는 10일, 독일과 덴마크,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공휴일이 가장 적은 9일입니다. 연방 국가인 스위스는 주(州)별로 8일에서 15일까지 공휴일 수가 다르고, 스페인도 지방에 따라 다릅니다.
유럽에서 국가 재정상의 이유로 공휴일을 축소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슬로바키아는 과거 법정 공휴일이 14일이었지만, 지난해 ‘벨벳 혁명’ 기념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했습니다. 또 2023년 덴마크는 부활절 다음 네 번째 금요일에 기념하는 ‘대기도의 날’을 폐지해 군사비 지출 증가에 자금을 지원했고, 이는 야당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공휴일 폐지로 프랑스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사이 의견도 엇갈립니다.
예산 담당 장관인 아멜리 드 몽샬랭은 “365일 중 이틀은 약 0.5%의 추가 활동에 해당한다”며, 이에 비례한 세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확언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의 의견은 다르다고 일간 ‘르 몽드’는 설명합니다. 국립통계경제연구소 분석 결과 “공휴일 하루는 GDP의 0.06% 포인트, 즉 약 16억 유로로 산출되고, 이틀은 GDP의 0.12%에 해당하므로 이는 정부가 기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르 몽드’는 분석했습니다.
■ 프랑스인 4명 중 3명 “반대”…“국가 마비시키자”
국민들은 당연히 반발합니다. 프랑스 여론조사 업체인 엘라베연구소가 현지 매체인 BFMTV 의뢰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프랑스 국민 4명 중 3명이 공휴일 이틀 폐지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대다수(65%)는 프랑스 부채 문제 해결의 시급성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공휴일 축소에는 반대했습니다. 반대 의견은 직장인(79%)뿐 아니라 퇴직자(71%) 양쪽 모두에서 높게 나왔습니다.
정부 제안에 반발해 프랑스 전체를 마비시키자는 운동까지 확산하고 있습니다.
최근 X(옛 트위터)에는 ‘전체 마비’라는 계정이 만들어져 9월 10일부터 프랑스를 마비시키자고 촉구하는 글이 퍼지고 있습니다.
간호사와 교사, 실업자, 주부, 젊은 취약 계층 등 약 20명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이 불공정한 계획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타격하고 우리 필수 서비스를 파괴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대형 마트 불매 운동을 벌이면서 “휴가를 내고 근무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의도적으로 늦추자”고 제안했습니다. 또 대형 은행이 투기와 사회 파괴 정책에 공모했다며 이곳에서 돈을 인출하자고도 제안합니다. 2018년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한 사람 일부도 이 단체의 주장을 SNS에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바이루 총리가 공휴일 폐지 계획을 수정하지 않으면 오는 9월 의회에서 불신임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과 바이루 총리의 중도파 연립정부가 의회 다수를 차지하지 못해 불신임의 벽을 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크롱 정부는 또 한 번 위기에 놓였습니다.
-
-
안다영 기자 browneyes@kbs.co.kr
안다영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