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수산대 실습생 사망…농장주는 같은 학교 교수였다

입력 2025.06.02 (17:18) 수정 2025.06.0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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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9일 오후 5시쯤 경남 합천군 율곡면의 한 돈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면제공: 경남소방본부)2025년 5월 19일 오후 5시쯤 경남 합천군 율곡면의 한 돈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면제공: 경남소방본부)

■ 돼지농장 화재로 실습생 참변…왜 혼자 빠져나오지 못했나?

지난 5월 19일 오후 경남 합천군의 돼지사육 농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화재는 발생 4시간 30여 분 만인 밤 9시 30분쯤 완전히 꺼졌지만 19세 남성 1명이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숨진 남성은 국립한국농수산대 2학년 학생으로 지난 3월부터 이곳에서 장기 현장실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습장에는 숨진 학생 외에 다른 농수산대 학생 1명과 노동자 19명도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작업 중이던 다른 이들은 모두 대피했는데 2층에서 일하던 이 학생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습니다.

국립한국농수산대 재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국립한국농수산대 재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

■ 형식뿐인 안전교육…의무 지침 외면한 실습장과 대학

사고 현장의 안전 교육은 제대로 이뤄졌을까?

이 농장은 2023년 한국농수산대의 현장 실습 기관으로 지정돼 2024년부터 실습생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한 차례도 안전 컨설팅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첫 컨설팅이 지난 5월 29일로 예정돼 있었는데 불과 10일을 남겨놓고 사고가 일어난 겁니다.

한국농수산대 졸업생들은 익명 게시판에서 교내 안전 교육이 실습의 특성과 관계없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안전 교육이 있는데 그냥 PPT 띄워놓고 하는 거고… 저번 주에 체육대회가 있어서 체육대회 겸 안전 교육을 하는데, 체육 대회를 하는 동시에 이제 안전 교육은 빨리 끝내버리니까… 하긴 하는데 그냥 ‘주의해라, 무거운 거 들지 마라’ 이 정도 얘기만…"
-한국농수산대 졸업생 A 씨

한국농수산대 학생이 현장 실습을 하다 목숨을 잃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2년 6월에도 경기도 고양시의 한 화훼농장에서 실습하던 이 대학 학생이 비료 배합 기계에 끼여 숨졌습니다.

당시 한국농수산대 측에서는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약속했지만 불과 3년 만에 다시 사망 사고가 나며 현장실습을 둘러싼 안전 논란이 불거진 겁니다.

현장실습 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학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2021년엔 전남 여수의 한 특성화고 고3 학생이 요트장에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이 실습생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상 잠수가 불가능한 나이였지만 실습 내용에도 없는 잠수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당시에도 역시 부실한 안전 교육과 미흡한 안전 대책이 도마에 올랐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한국농수산대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 쪽지 제보한국농수산대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 쪽지 제보

■ 농장주는 한국농수산대 교수…최저시급도 못 받아

한국농수산대는 국내에 유일한 3년제 농·어업 전문 국립대입니다.

재학생들은 이론과 실무 수업을 병행하며 2학년이 되면 최소 8개월 현장실습을 필수로 이수해야 합니다.

숨진 학생은 실습 3개월 차였습니다.

'임신사' 구역에서 돼지의 임신과 출산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 40시간을 근무하고 지원금으로 월 80만 원을 받았습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주 40시간을 근무했을 때 노동자가 한 달에 받아야 할 급여는 최소 2,096,270원입니다.

"너무 천차만별인데 적게 받는 데는 한 달에 30만 원까지도 받고요, 양돈이나 한우 농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가지고 한 6시까지 하다가 거기 친구들은 조금 더 받는 것 같긴 해요. 한 150만 원. 근데 그래도 최저임금이 안 되긴 해요."
-한국농수산대 졸업생 A 씨

사고가 난 농장의 소유주는 다름 아닌 한국농수산대 교수였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습생인 한국농수산대 학생은 사고 위험이나 부당한 처우를 느끼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실습은 ‘교육’이 아닌 ‘노동’ 그 자체였다고 입을 모읍니다.

평일에는 교수가 주인으로 있는 농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교수의 개인적인 잡무를 처리했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 교육인가, 노동인가?…실습생의 ‘근로자성’ 두고 본격 조사

일반적으로 대학생 현장 실습은 근로계약이 아닌 교육부가 고시한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에 따라 이뤄집니다.

하지만 한국농수산대는 ‘한국농수산대학설치법’이라는 별도의 고시가 있어 교육부 고시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이번에 숨지거나 다친 두 학생 모두 근로계약서나 대학생 현장실습생 운영 규정이 아닌 학교 및 농가와의 협약에 따라 실습을 진행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66조의2에는 현장실습생 특례조항이 존재합니다.

사업주는 현장실습생에게도 정기적인 안전보건교육과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이행해야 하며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즉각 작업 중지 및 대피 조치를 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은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래 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대학교 현장실습생이 사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 대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은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데 아직 입건된 관련자는 없습니다.

수사 당국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명분 뒤에 가려진 값싼 노동, 그리고 안전 사각지대에서 반복되는 사고.

이번 사고는 단순한 화재가 아닌 현장실습 제도 이면에 가려진 부실한 안전과 제도가 부른 비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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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6-02 17:18:49
    • 수정2025-06-02 18: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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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9일 오후 5시쯤 경남 합천군 율곡면의 한 돈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면제공: 경남소방본부)
■ 돼지농장 화재로 실습생 참변…왜 혼자 빠져나오지 못했나?

지난 5월 19일 오후 경남 합천군의 돼지사육 농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화재는 발생 4시간 30여 분 만인 밤 9시 30분쯤 완전히 꺼졌지만 19세 남성 1명이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숨진 남성은 국립한국농수산대 2학년 학생으로 지난 3월부터 이곳에서 장기 현장실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습장에는 숨진 학생 외에 다른 농수산대 학생 1명과 노동자 19명도 함께 일하고 있었습니다.

작업 중이던 다른 이들은 모두 대피했는데 2층에서 일하던 이 학생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습니다.

국립한국농수산대 재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
■ 형식뿐인 안전교육…의무 지침 외면한 실습장과 대학

사고 현장의 안전 교육은 제대로 이뤄졌을까?

이 농장은 2023년 한국농수산대의 현장 실습 기관으로 지정돼 2024년부터 실습생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한 차례도 안전 컨설팅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첫 컨설팅이 지난 5월 29일로 예정돼 있었는데 불과 10일을 남겨놓고 사고가 일어난 겁니다.

한국농수산대 졸업생들은 익명 게시판에서 교내 안전 교육이 실습의 특성과 관계없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안전 교육이 있는데 그냥 PPT 띄워놓고 하는 거고… 저번 주에 체육대회가 있어서 체육대회 겸 안전 교육을 하는데, 체육 대회를 하는 동시에 이제 안전 교육은 빨리 끝내버리니까… 하긴 하는데 그냥 ‘주의해라, 무거운 거 들지 마라’ 이 정도 얘기만…"
-한국농수산대 졸업생 A 씨

한국농수산대 학생이 현장 실습을 하다 목숨을 잃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2년 6월에도 경기도 고양시의 한 화훼농장에서 실습하던 이 대학 학생이 비료 배합 기계에 끼여 숨졌습니다.

당시 한국농수산대 측에서는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약속했지만 불과 3년 만에 다시 사망 사고가 나며 현장실습을 둘러싼 안전 논란이 불거진 겁니다.

현장실습 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학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2021년엔 전남 여수의 한 특성화고 고3 학생이 요트장에 현장 실습을 나갔다가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이 실습생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상 잠수가 불가능한 나이였지만 실습 내용에도 없는 잠수 작업을 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당시에도 역시 부실한 안전 교육과 미흡한 안전 대책이 도마에 올랐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한국농수산대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 쪽지 제보
■ 농장주는 한국농수산대 교수…최저시급도 못 받아

한국농수산대는 국내에 유일한 3년제 농·어업 전문 국립대입니다.

재학생들은 이론과 실무 수업을 병행하며 2학년이 되면 최소 8개월 현장실습을 필수로 이수해야 합니다.

숨진 학생은 실습 3개월 차였습니다.

'임신사' 구역에서 돼지의 임신과 출산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주 40시간을 근무하고 지원금으로 월 80만 원을 받았습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주 40시간을 근무했을 때 노동자가 한 달에 받아야 할 급여는 최소 2,096,270원입니다.

"너무 천차만별인데 적게 받는 데는 한 달에 30만 원까지도 받고요, 양돈이나 한우 농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가지고 한 6시까지 하다가 거기 친구들은 조금 더 받는 것 같긴 해요. 한 150만 원. 근데 그래도 최저임금이 안 되긴 해요."
-한국농수산대 졸업생 A 씨

사고가 난 농장의 소유주는 다름 아닌 한국농수산대 교수였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실습생인 한국농수산대 학생은 사고 위험이나 부당한 처우를 느끼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실습은 ‘교육’이 아닌 ‘노동’ 그 자체였다고 입을 모읍니다.

평일에는 교수가 주인으로 있는 농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에는 교수의 개인적인 잡무를 처리했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 교육인가, 노동인가?…실습생의 ‘근로자성’ 두고 본격 조사

일반적으로 대학생 현장 실습은 근로계약이 아닌 교육부가 고시한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에 따라 이뤄집니다.

하지만 한국농수산대는 ‘한국농수산대학설치법’이라는 별도의 고시가 있어 교육부 고시 적용도 받지 않습니다.

이번에 숨지거나 다친 두 학생 모두 근로계약서나 대학생 현장실습생 운영 규정이 아닌 학교 및 농가와의 협약에 따라 실습을 진행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66조의2에는 현장실습생 특례조항이 존재합니다.

사업주는 현장실습생에게도 정기적인 안전보건교육과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이행해야 하며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즉각 작업 중지 및 대피 조치를 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은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래 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대학교 현장실습생이 사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 대해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은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데 아직 입건된 관련자는 없습니다.

수사 당국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교육이라는 명분 뒤에 가려진 값싼 노동, 그리고 안전 사각지대에서 반복되는 사고.

이번 사고는 단순한 화재가 아닌 현장실습 제도 이면에 가려진 부실한 안전과 제도가 부른 비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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