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뜨끈한 해장국의 주재료인 황태. 강원도 인제 용대리 하면 떠오르는 대표 특산물입니다. 명태가 겨울 설악산의 칼바람을 맞으며 덕장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 특유의 구수한 향과 맛을 자랑하는 황태로 거듭납니다. 황태는 지역민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효자 상품인데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똥이 이 황태 산업으로 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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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황태 맞아?" …머리 없는 황태의 등장
겨울이 끝자락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용대리는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은 데다 바람도 많이 불어 과거부터 농사를 짓기엔 적절하지 않은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혹독한 환경이 황태를 만들기엔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대 주민 200여 명은 황태 제조와 가공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덕장 한편에 걸려있는 명태의 모양이 예년과는 조금 다릅니다.
명태의 머리가 모조리 잘려 나갔습니다. 일반적으로 명태 아가미에 줄을 꿰 덕장에 거는데, 이 명태는 머리가 없으니 몸통에 바로 줄을 매달아 걸어뒀습니다.
덕장에 걸린 건 다름아닌 미국산 명태입니다. 이런 머리 없는 미국산 명태가 지난해 2월부터 조금씩 덕장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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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머리가 있는 러시아산 명태를 수입해 가공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미국이 지난해 러시아산 수산물과 가공식품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러시아산 명태로 만든다는 이유로 강원도 황태가 이때부터 미국의 수입 금지 품목에 들어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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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용대리 황태 생산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전국 황태 생산의 70%가 용대리에서 이뤄집니다. 이 곳에만 20여 개 황태 제조업체가 있습니다.
이 중 서너 곳은 아예 미국 수출을 전문으로 했는데 미국의 수입 규제로 한순간에 판로를 잃어버렸습니다.
수출길이 막히자, 황태 제조업자들은 러시아산 대신 급한 대로 머리가 잘린 미국산 명태를 수입해 황태를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미국산 명태는 러시아산보다 가격이 비쌉니다. 거기다 차가운 바다에서 잡히는 명태의 특성상 러시아산보다 품질이 떨어집니다.
더군다나 물량 확보도 어려워 안정적인 수급도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용대리 곳곳의 덕장에는 이런 미국 명태 수입이 안 돼 비어있는 덕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 황태 수출액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 …지역 사회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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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국 수출길이 막힌채 꼬박 1년이 흘렀습니다. 실제 타격은 우려보다 컸습니다.
2022년 10억 원을 기록했던 인제의 황태 수출액은 지난해 2월 이후 1억 원으로 급감했습니다. 예년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겁니다.
미국의 수입 규제 발표 이후 호주나 베트남 등 다른 판로 개척을 모색했지만, 기존 미국 시장의 규모가 워낙 컸기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판로가 막히자 저온 창고에는 황태 재고가 쌓여 있습니다. 지난해 만들어둔 황태가 높이 7m 이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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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황태 산업이 모두 고사하고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
인제군 전체 수출액의 40%가량을 차지하는 황태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서 황태 산업 전반에도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규제 전 한해 3,300만 마리의 황태가 생산됐지만, 올해 황태 생산량은 800만 마리에 그쳤습니다.
지역민 모두가 황태만을 바라보고 사는 곳인데, 미국의 수입 규제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지경입니다.
3대째 황태 덕장을 운영해 온 이강열 씨는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황태 산업이 고사할지도 모른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 트럼프의 종전 협상 돌파구 될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종전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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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 등 광물 거래 협상에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최종 합의하며 종전이 멀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길어진 전쟁 기간 어려움을 겪어온 황태 제조업자들은 최근 종전 협상 논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종전이 빨라질수록 미국의 수입 규제도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 다시 미국 수출에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뉴스만 보고 있어요. 우리는 당장의 생계가 걸린 일이니까요." |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인제 용대리는 하루 빨리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 황태가 다시 태평양을 건너가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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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인제 덕장에 머리 없는 황태가 내걸린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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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2-27 18:00:53
뜨끈한 해장국의 주재료인 황태. 강원도 인제 용대리 하면 떠오르는 대표 특산물입니다. 명태가 겨울 설악산의 칼바람을 맞으며 덕장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 특유의 구수한 향과 맛을 자랑하는 황태로 거듭납니다. 황태는 지역민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효자 상품인데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똥이 이 황태 산업으로 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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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황태 맞아?" …머리 없는 황태의 등장
겨울이 끝자락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용대리는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은 데다 바람도 많이 불어 과거부터 농사를 짓기엔 적절하지 않은 땅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런 혹독한 환경이 황태를 만들기엔 최적의 조건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대 주민 200여 명은 황태 제조와 가공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덕장 한편에 걸려있는 명태의 모양이 예년과는 조금 다릅니다.
명태의 머리가 모조리 잘려 나갔습니다. 일반적으로 명태 아가미에 줄을 꿰 덕장에 거는데, 이 명태는 머리가 없으니 몸통에 바로 줄을 매달아 걸어뒀습니다.
덕장에 걸린 건 다름아닌 미국산 명태입니다. 이런 머리 없는 미국산 명태가 지난해 2월부터 조금씩 덕장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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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머리가 있는 러시아산 명태를 수입해 가공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미국이 지난해 러시아산 수산물과 가공식품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러시아산 명태로 만든다는 이유로 강원도 황태가 이때부터 미국의 수입 금지 품목에 들어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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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용대리 황태 생산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전국 황태 생산의 70%가 용대리에서 이뤄집니다. 이 곳에만 20여 개 황태 제조업체가 있습니다.
이 중 서너 곳은 아예 미국 수출을 전문으로 했는데 미국의 수입 규제로 한순간에 판로를 잃어버렸습니다.
수출길이 막히자, 황태 제조업자들은 러시아산 대신 급한 대로 머리가 잘린 미국산 명태를 수입해 황태를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미국산 명태는 러시아산보다 가격이 비쌉니다. 거기다 차가운 바다에서 잡히는 명태의 특성상 러시아산보다 품질이 떨어집니다.
더군다나 물량 확보도 어려워 안정적인 수급도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용대리 곳곳의 덕장에는 이런 미국 명태 수입이 안 돼 비어있는 덕대가 적지 않았습니다.
■ 황태 수출액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 …지역 사회도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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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미국 수출길이 막힌채 꼬박 1년이 흘렀습니다. 실제 타격은 우려보다 컸습니다.
2022년 10억 원을 기록했던 인제의 황태 수출액은 지난해 2월 이후 1억 원으로 급감했습니다. 예년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겁니다.
미국의 수입 규제 발표 이후 호주나 베트남 등 다른 판로 개척을 모색했지만, 기존 미국 시장의 규모가 워낙 컸기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판로가 막히자 저온 창고에는 황태 재고가 쌓여 있습니다. 지난해 만들어둔 황태가 높이 7m 이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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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황태 산업이 모두 고사하고 지역경제에도 큰 타격을 받게 될 겁니다." |
인제군 전체 수출액의 40%가량을 차지하는 황태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서 황태 산업 전반에도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규제 전 한해 3,300만 마리의 황태가 생산됐지만, 올해 황태 생산량은 800만 마리에 그쳤습니다.
지역민 모두가 황태만을 바라보고 사는 곳인데, 미국의 수입 규제로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지경입니다.
3대째 황태 덕장을 운영해 온 이강열 씨는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황태 산업이 고사할지도 모른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 트럼프의 종전 협상 돌파구 될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종전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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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토류 등 광물 거래 협상에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최종 합의하며 종전이 멀지 않았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길어진 전쟁 기간 어려움을 겪어온 황태 제조업자들은 최근 종전 협상 논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종전이 빨라질수록 미국의 수입 규제도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 다시 미국 수출에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뉴스만 보고 있어요. 우리는 당장의 생계가 걸린 일이니까요." |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인제 용대리는 하루 빨리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 황태가 다시 태평양을 건너가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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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newjean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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