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 이용해 보셨나요?
전통적인 새벽 배송이 신문과 우유 배달의 형태였다면, 지금은 사실상 모든 것이 밤사이 배달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2015년 신선 식품을 중심으로 시작된 업체들의 새벽 배송 서비스는 당초 '강남 엄마'들의 소비 행태로 평가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더 보편화된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 보는 시간을 아낄 수 있음은 물론, 자고 일어나면 원하는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는 예측 가능성이 새벽 배송을 찾는 이유가 됐습니다.
한 새벽 배송기사가 현관문 앞에 택배를 배달하고 있다. (KBS 자료화면)
밤사이 도착한 택배 상자를 뜯다가, 문득 이 택배를 부지런히 배달한 배송기사를 생각해 보신 적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새벽 배송기사는 사람들이 잘 때 가장 바쁘게 일을 하기 때문에 대면하기조차 쉽지 않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일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기가 어렵죠.
그런데 최근 한 국내 연구팀이 새벽 배송기사들의 생활과 노동 실태를 보여주는 설문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분석해 공개했습니다.
모두 1,021명의 새벽 배송 종사자들이 94개 문항으로 구성된 설문조사에 답변했는데요.
새벽 배송기사들만을 상대로 이같은 대규모 설문조사가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새벽 배송기사, 어떤 사람들일까?
연구팀이 공개한 기초 통계를 보면, 설문조사에 답한 새벽 배송기사들의 평균 연령은 36세(1988년생)였습니다.
성별을 보면 남성이 84.6%, 여성이 15.4%를 차지했습니다.
사는 지역은 서울이 46%로 가장 많았고, 29%는 경기·인천, 20%는 광역시, 5%는 기타 지역으로 분류됐습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95%를 차지한 겁니다.
최종 학력은 전문대 졸업이 37.61%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교 졸업 31.34%,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30.66%, 중학교 이하 0.39% 순이었습니다.
연구팀 책임연구자인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존에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과 비교한 한국 플랫폼 노동자들의 특징을 살펴봤을 때도, (고학력이라는) 유사한 모습이 나타났다"면서 "이를 통해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어느 정도 대표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새벽 배송 일감을 받는 플랫폼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69.25%가 쿠팡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컬리가 23.02%, SSG 5.78%, 오아시스마켓이 1.86%로 뒤를 이었습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52%)이 소득의 100%를 새벽 배송 일로 벌어들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전업으로 새벽 배송에 뛰어든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입니다.
전체 응답자로 넓혀도, 새벽 배송으로 얻는 월 소득이 전체 월 소득의 평균 74.4%를 차지해 소득 기여도가 높았습니다.
응답자들이 새벽배송을 해서 얻는 소득을 물었더니, 월 평균 272만 9천5백 원이었습니다. 이는 2022년 기준 국내 임금근로자 평균소득(353만 원)의 77% 수준으로, 2022년 기준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 267만 원보다 5만 9천5백 원 많습니다.
이승윤 교수는 "유럽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엔 '주된 일자리'로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비율이 높다는 특징이 있으며, 이는 새벽 배송 플랫폼 노동자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아르바이트나 부업 등 간헐적으로 일하는 분보다는 새벽 배송을 주된 소득원으로 갖고 일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주 5일 이상 새벽 배송을 한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68%였고, 주 6일 새벽 배송 업무를 하는 경우도 전체의 31.4%에 달했습니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배송 노동을 아르바이트나 임시 노동, 부업으로 취급하며 이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는 아직 필요하지 않다는 시각도 많다"면서 "이번 결과를 보며 그런 프레임에서 벗어나, 배송 노동을 정식 노동으로 인정하면서 이 노동을 어떻게 보호하고 평가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 새벽배송 노동, 건강에 직격탄…"수면 장애 비율 3배 이상"
연구팀 설문조사에 따르면, 새벽 배송기사들의 근무 시간은 밤 9시에서 다음날 아침 8시 사이에 몰려 있었습니다.
새벽 5시가 넘어서 일을 마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1.2%였습니다. 새벽 배송기사의 절대 다수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남들이 일하는 낮 시간에 자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통상 근로환경조사에서 노동자의 '수면 장애' 여부를 파악할 때는, "잠들기 어렵다" "자는 동안 자주 깬다" "자고 일어나도 지치고 피곤하다"에 긍정적으로 답변했는지를 보는데요.
연구팀이 이 세 가지 '수면 장애' 관련 문항 답변을 비교한 결과, 새벽배송 기사 집단에서의 긍정 답변 비율이 전체 노동자 집단(2023년 근로환경조사)보다 3.3~3.9배 높았습니다.
전체 야간 노동자(2023년 근로환경조사)와 비교해도, 새벽배송 기사의 '잠들기 어려움' 비율은 2.66배 높았습니다. 밤에 일하는 직업 중에서도 새벽배송 기사들이 특히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수면 장애는 우울 증상, 자살 위험과 직결됩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설문에 응답한 새벽 배송기사의 46.8%가 우울 증상을 호소했다"며 "이는 연령과 교육 수준을 표준화한 근로환경조사 데이터의 전체 노동자군과 비교했을 때 3.2배 높은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가 같은 방법으로 비교한 '자살 생각' 관련 답변을 보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한 새벽 배송기사의 비율은 전체 노동자보다 4.6배 높게 나타나는 등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승섭 교수는 지난 17일 국회 토론회에서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 사람들과 비교해서 새벽 배송 노동자들이 3배 이상 자살을 자주 생각하고 계획하고 자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수치의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같은 결과를 새벽 배송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건강 불평등'으로 규정했습니다.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야간 노동은 20세기 들어서, 특히 전기가 생겨나고 야간 노동이 대규모화 되면서 생겨났던 것들"이라며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누군가의 몸이 그러한 변화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그 변화가 혁신과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제가 매우 두려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새벽 배송 노동이 점점 상식이 되어 가는 상황"이라며 "새벽 배송으로 사람들이 편리를 누리고 기업이 이윤을 최대한 뽑아낼 때, 정치적으로 말할 만큼의 힘을 갖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의 몸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새벽 배송, 새로운 착취 구조의 시작?…"건강권 보호 필요"
이번에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는 편리한 서비스로만 여겨졌던 '새벽 배송'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내가 소비자로서 누리게 된 새벽 배송의 편리함이, 사실은 다른 누군가의 건강을 크게 해침으로써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국회 토론회에서 "과연 새벽 배송의 편리가 노동자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자체를 방해하면서까지 얻어야 할 편리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제언했습니다.
김승섭 교수 역시 "현재의 새벽 노동은 가장 열악한 계급의 야간 노동을 이용해 누군가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식의, 보이지 않는 착취 구조가 만연화되고 강화되는 시스템의 시작일 수 있다"면서 "우리는 그런 사회를 용납해도 되는가, 이러한 경향이 강화되는 것을 좌시해도 되는가"라고 묻고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새벽 배송 자체를 없애기 어렵더라도, 새벽 배송기사들의 건강권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난해 5월 숨진 쿠팡CLS 대리점 '로켓배송' 기사 정슬기 씨의 아버지 정금석 씨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10월, 정슬기 씨의 사망을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산업재해)로 인정했습니다.
정금석 씨는 지난 17일 국회 토론회에서 "심야 노동을 기업에만 맡기면 안 되고, 국가가 나서야 한다"면서 "이제라도 공적 규제를 마련해 노동자들이 죽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지난해 5월 퇴근 후 숨진 ‘로켓배송’ 기사 정슬기 씨의 아버지 정금석 씨가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배송기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 시간을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박은정 교수는 "새벽 배송기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였다면 이렇게 사용이 가능했을까.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하는 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못 하는 결과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배송기사들은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됩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고용 계약이 아닌 업무위탁 계약 등을 맺어 노동을 제공하고, 수수료 등의 형태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고 정슬기 씨의 과로사 이후 쿠팡CLS에 대한 근로감독에 나섰던 고용노동부는 지난 14일 "퀵플레서(대리점 배송기사) 등의 야간 업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쿠팡에 요구했지만, 법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근로 시간에 대한 구체적 규제책을 내놓진 못 했습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고용 형태가 갖는 한계가 있다면, 최소한 과로사 산업재해 기준인 주 60시간을 준용하여 택배기사의 노동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어야 했다"며 "기존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택배 노동자의 건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일말의 실효적 접근도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건당 수수료로 돈을 버는 배송기사들에 대한 근로 시간 규제는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배송기사 당사자들의 반감도 크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와 관련해 강민욱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7일 국회 토론회에서 "택배기사의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논의는 적정 임금, 적정 수수료를 맞추자는 논의와 함께 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수수료를 인상하면 배송기사들로 하여금 '내가 더 일할 필요가 없네'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죽지 않기 위해서 적게 일하고, 돈도 적게 벌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새벽 배송이 '질 나쁜 일자리'임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이를 전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왜 사람들이 새벽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까. 돌고 돌고 돌아서 이거라도 붙잡고 살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라며 "사회 보장과 소득 보장이 잘 돼 있는 나라들은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노후가 충분히 보장돼 있다면 굳이 젊었을 때 몸을 갈아 넣으면서 일할 필요가 없다"며, 새벽 노동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노동권뿐 아니라 사회 보장과 실업 보장,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연금 등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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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배송기사’로 일한다는 건?…뜻밖의 답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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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5-01-19 06:21:42
'새벽 배송' 이용해 보셨나요?
전통적인 새벽 배송이 신문과 우유 배달의 형태였다면, 지금은 사실상 모든 것이 밤사이 배달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2015년 신선 식품을 중심으로 시작된 업체들의 새벽 배송 서비스는 당초 '강남 엄마'들의 소비 행태로 평가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더 보편화된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 보는 시간을 아낄 수 있음은 물론, 자고 일어나면 원하는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는 예측 가능성이 새벽 배송을 찾는 이유가 됐습니다.
밤사이 도착한 택배 상자를 뜯다가, 문득 이 택배를 부지런히 배달한 배송기사를 생각해 보신 적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새벽 배송기사는 사람들이 잘 때 가장 바쁘게 일을 하기 때문에 대면하기조차 쉽지 않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일지 머릿속으로 그려보기가 어렵죠.
그런데 최근 한 국내 연구팀이 새벽 배송기사들의 생활과 노동 실태를 보여주는 설문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분석해 공개했습니다.
모두 1,021명의 새벽 배송 종사자들이 94개 문항으로 구성된 설문조사에 답변했는데요.
새벽 배송기사들만을 상대로 이같은 대규모 설문조사가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 새벽 배송기사, 어떤 사람들일까?
연구팀이 공개한 기초 통계를 보면, 설문조사에 답한 새벽 배송기사들의 평균 연령은 36세(1988년생)였습니다.
성별을 보면 남성이 84.6%, 여성이 15.4%를 차지했습니다.
사는 지역은 서울이 46%로 가장 많았고, 29%는 경기·인천, 20%는 광역시, 5%는 기타 지역으로 분류됐습니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 95%를 차지한 겁니다.
최종 학력은 전문대 졸업이 37.61%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교 졸업 31.34%,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30.66%, 중학교 이하 0.39% 순이었습니다.
연구팀 책임연구자인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기존에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과 비교한 한국 플랫폼 노동자들의 특징을 살펴봤을 때도, (고학력이라는) 유사한 모습이 나타났다"면서 "이를 통해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어느 정도 대표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새벽 배송 일감을 받는 플랫폼을 물었더니, 응답자의 69.25%가 쿠팡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컬리가 23.02%, SSG 5.78%, 오아시스마켓이 1.86%로 뒤를 이었습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52%)이 소득의 100%를 새벽 배송 일로 벌어들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전업으로 새벽 배송에 뛰어든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입니다.
전체 응답자로 넓혀도, 새벽 배송으로 얻는 월 소득이 전체 월 소득의 평균 74.4%를 차지해 소득 기여도가 높았습니다.
응답자들이 새벽배송을 해서 얻는 소득을 물었더니, 월 평균 272만 9천5백 원이었습니다. 이는 2022년 기준 국내 임금근로자 평균소득(353만 원)의 77% 수준으로, 2022년 기준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 267만 원보다 5만 9천5백 원 많습니다.
이승윤 교수는 "유럽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엔 '주된 일자리'로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비율이 높다는 특징이 있으며, 이는 새벽 배송 플랫폼 노동자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아르바이트나 부업 등 간헐적으로 일하는 분보다는 새벽 배송을 주된 소득원으로 갖고 일하는 노동자가 많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주 5일 이상 새벽 배송을 한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68%였고, 주 6일 새벽 배송 업무를 하는 경우도 전체의 31.4%에 달했습니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배송 노동을 아르바이트나 임시 노동, 부업으로 취급하며 이에 대한 노동법적 보호는 아직 필요하지 않다는 시각도 많다"면서 "이번 결과를 보며 그런 프레임에서 벗어나, 배송 노동을 정식 노동으로 인정하면서 이 노동을 어떻게 보호하고 평가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 새벽배송 노동, 건강에 직격탄…"수면 장애 비율 3배 이상"
연구팀 설문조사에 따르면, 새벽 배송기사들의 근무 시간은 밤 9시에서 다음날 아침 8시 사이에 몰려 있었습니다.
새벽 5시가 넘어서 일을 마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1.2%였습니다. 새벽 배송기사의 절대 다수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남들이 일하는 낮 시간에 자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통상 근로환경조사에서 노동자의 '수면 장애' 여부를 파악할 때는, "잠들기 어렵다" "자는 동안 자주 깬다" "자고 일어나도 지치고 피곤하다"에 긍정적으로 답변했는지를 보는데요.
연구팀이 이 세 가지 '수면 장애' 관련 문항 답변을 비교한 결과, 새벽배송 기사 집단에서의 긍정 답변 비율이 전체 노동자 집단(2023년 근로환경조사)보다 3.3~3.9배 높았습니다.
전체 야간 노동자(2023년 근로환경조사)와 비교해도, 새벽배송 기사의 '잠들기 어려움' 비율은 2.66배 높았습니다. 밤에 일하는 직업 중에서도 새벽배송 기사들이 특히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수면 장애는 우울 증상, 자살 위험과 직결됩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설문에 응답한 새벽 배송기사의 46.8%가 우울 증상을 호소했다"며 "이는 연령과 교육 수준을 표준화한 근로환경조사 데이터의 전체 노동자군과 비교했을 때 3.2배 높은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김 교수가 같은 방법으로 비교한 '자살 생각' 관련 답변을 보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한 새벽 배송기사의 비율은 전체 노동자보다 4.6배 높게 나타나는 등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승섭 교수는 지난 17일 국회 토론회에서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 사람들과 비교해서 새벽 배송 노동자들이 3배 이상 자살을 자주 생각하고 계획하고 자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며 수치의 위험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같은 결과를 새벽 배송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건강 불평등'으로 규정했습니다.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야간 노동은 20세기 들어서, 특히 전기가 생겨나고 야간 노동이 대규모화 되면서 생겨났던 것들"이라며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누군가의 몸이 그러한 변화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데, 그 변화가 혁신과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제가 매우 두려운 것은 한국 사회에서 새벽 배송 노동이 점점 상식이 되어 가는 상황"이라며 "새벽 배송으로 사람들이 편리를 누리고 기업이 이윤을 최대한 뽑아낼 때, 정치적으로 말할 만큼의 힘을 갖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의 몸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새벽 배송, 새로운 착취 구조의 시작?…"건강권 보호 필요"
이번에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는 편리한 서비스로만 여겨졌던 '새벽 배송'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내가 소비자로서 누리게 된 새벽 배송의 편리함이, 사실은 다른 누군가의 건강을 크게 해침으로써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박은정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 17일 국회 토론회에서 "과연 새벽 배송의 편리가 노동자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자체를 방해하면서까지 얻어야 할 편리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제언했습니다.
김승섭 교수 역시 "현재의 새벽 노동은 가장 열악한 계급의 야간 노동을 이용해 누군가의 시간을 절약해 주는 식의, 보이지 않는 착취 구조가 만연화되고 강화되는 시스템의 시작일 수 있다"면서 "우리는 그런 사회를 용납해도 되는가, 이러한 경향이 강화되는 것을 좌시해도 되는가"라고 묻고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새벽 배송 자체를 없애기 어렵더라도, 새벽 배송기사들의 건강권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난해 5월 숨진 쿠팡CLS 대리점 '로켓배송' 기사 정슬기 씨의 아버지 정금석 씨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10월, 정슬기 씨의 사망을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산업재해)로 인정했습니다.
정금석 씨는 지난 17일 국회 토론회에서 "심야 노동을 기업에만 맡기면 안 되고, 국가가 나서야 한다"면서 "이제라도 공적 규제를 마련해 노동자들이 죽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배송기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 시간을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박은정 교수는 "새벽 배송기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였다면 이렇게 사용이 가능했을까. 최소한의 안전망이라고 하는 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못 하는 결과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배송기사들은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됩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고용 계약이 아닌 업무위탁 계약 등을 맺어 노동을 제공하고, 수수료 등의 형태로 대가를 받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고 정슬기 씨의 과로사 이후 쿠팡CLS에 대한 근로감독에 나섰던 고용노동부는 지난 14일 "퀵플레서(대리점 배송기사) 등의 야간 업무 경감 방안을 마련하라"고 쿠팡에 요구했지만, 법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근로 시간에 대한 구체적 규제책을 내놓진 못 했습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고용 형태가 갖는 한계가 있다면, 최소한 과로사 산업재해 기준인 주 60시간을 준용하여 택배기사의 노동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어야 했다"며 "기존 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택배 노동자의 건강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일말의 실효적 접근도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건당 수수료로 돈을 버는 배송기사들에 대한 근로 시간 규제는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배송기사 당사자들의 반감도 크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와 관련해 강민욱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7일 국회 토론회에서 "택배기사의 노동 시간을 줄이자는 논의는 적정 임금, 적정 수수료를 맞추자는 논의와 함께 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수수료를 인상하면 배송기사들로 하여금 '내가 더 일할 필요가 없네'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죽지 않기 위해서 적게 일하고, 돈도 적게 벌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새벽 배송이 '질 나쁜 일자리'임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이를 전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왜 사람들이 새벽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까. 돌고 돌고 돌아서 이거라도 붙잡고 살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라며 "사회 보장과 소득 보장이 잘 돼 있는 나라들은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보장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노후가 충분히 보장돼 있다면 굳이 젊었을 때 몸을 갈아 넣으면서 일할 필요가 없다"며, 새벽 노동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 "노동권뿐 아니라 사회 보장과 실업 보장,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연금 등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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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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