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이해찬-김종인, 32년만에 총선에서 다시 만났다
입력 2020.03.30 (08:27)
수정 2020.03.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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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차르'(러시아 절대군주).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다시 정치권에 복귀했습니다. 이번에는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입니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총선 승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고,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지휘했던 김 전 대표. 이번에는 또다시 미래통합당에 합류했습니다.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선거 때마다 승리를 이끌어낸 그의 독특한 정치 이력만큼 주목받는 게 또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의 인연(因緣), 굳이 말하자면 '악연(惡緣)'에 가까운 인연입니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청양면장댁 셋째 아들' 이 대표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대학교수와 장관 등을 지낸 김 전 대표.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던 두 사람의 인연, 악연은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시작됩니다.
지역구 선거 맞대결…이해찬의 승리
1987년 6.10 민주화항쟁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13대 총선의 서울 관악을 지역구였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 후보로 나선 사람, 바로 김종인 전 대표였습니다. 서강대 교수 출신에 제11, 12대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 노태우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 등 이력도 화려했습니다.
김 대표는 선거 공보물에서 "경제민주화 완결을 위해, 관악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할 인물"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에도 '사회보장과 재분배 확장에 관여', '서민을 대변해 경제민주화 완결' 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지역구에서 야당인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선 사람이 이해찬 민주당 대표입니다. 당시 36살의 '청년 정치인'이던 이 대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 부위원장 등 민주화 운동 관련 경력을 대표 경력으로 기재했습니다.
권력형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자 처벌, 서민생계 보장, 자주외교와 평화통일, 여성지위 향상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싸워온 사람, 지극히 겸손한 사람, 정확한 판단력과 탁월한 이론으로 민주화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라고 소개도 했습니다.
선거 결과, 어땠을까요?
3만9,950표, 31.1%의 지지를 얻은 이 대표가 27.1%에 그친 김 전 대표를 제치고 당선됐습니다. 훗날 7선 의원에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여당 대표를 지내게 된 '정치인 이해찬'의 첫 국회 입성이었습니다.
"선거 위한 정치적 결단…이해찬 컷오프"
두 사람의 두 번째 악연, 4년 전인 2016년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 등이 탈당하면서 당내 분란으로 혼란스럽던 더불어민주당에 김종인 전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장합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결단이었습니다.
공천의 전권을 쥐게 된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 대표. '공천 학살'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물갈이'에 나섰습니다. 당의 '공격수' 역할을 자임하던 강기정, 정청래 의원은 물론 당의 중진인 문희상, 신계륜 의원이 줄줄이 '컷오프', 공천 배제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물갈이'의 절정은 당시 당내 주류세력이던 '친노(親盧)' 그룹의 좌장, 이해찬 의원의 '컷오프'였습니다.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던 김종인 당시 대표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성수 당시 당 대변인은 "비대위의 결정은 총선 승리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해찬 의원, 김 대표의 주도로 이뤄진 이 같은 결정에 불복했습니다. "이유와 근거가 없다. 도덕성이든 경쟁력이든 의정활동 평가든, 합당한 명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 대표를 비난도 했습니다.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서 "공당의 결정은 명분이 있어야 하며, 합의된 방식에 따라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습니다. '무소속' 이해찬 후보, 세종시 지역구에서 4만6,187표, 43.7%의 득표율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보란듯 민주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아는대로입니다. 김종인 대표는 2017년 3월, "경제민주화 법안 등 개혁입법 처리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을 느꼈다"면서 민주당 입성 13개월 만에 탈당했습니다. '돌아온' 이해찬 의원은 2018년 8월 당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이번엔 '선거 사령탑'으로…세 번째의 결과는?
이해찬 대표와 김종인 전 대표의 세 번째 만남. 이번에는 둘 다 '사령탑'으로서의 조우입니다. 이 대표는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김 전 대표는 통합당의 총괄선대위원장입니다.
통합당이 김 전 대표를 영입하려 한다는 소식은 올해 초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식석상에서 한 번도 김 전 대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 뿐만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김 전 대표의 통합당 행에 대해 아무런 공식적인 말이 없습니다.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민주당의 반응입니다.
반면, 김종인 전 대표, 등장하자마자 100조 원 규모의 '코로나 비상대책 예산' 확보를 제안했습니다. '국회의석 과반 정당을 만들겠다'면서 선거판 흔들기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도 한 사람이 축배를 들면, 다른 한 사람은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거듭 얽혀온 두 사람의 인연, 혹은 악연. 이번에는 어떤 결과로 끝날까요?
2012년에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총선 승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고,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지휘했던 김 전 대표. 이번에는 또다시 미래통합당에 합류했습니다.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선거 때마다 승리를 이끌어낸 그의 독특한 정치 이력만큼 주목받는 게 또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의 인연(因緣), 굳이 말하자면 '악연(惡緣)'에 가까운 인연입니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청양면장댁 셋째 아들' 이 대표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대학교수와 장관 등을 지낸 김 전 대표.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던 두 사람의 인연, 악연은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시작됩니다.
지역구 선거 맞대결…이해찬의 승리
1987년 6.10 민주화항쟁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13대 총선의 서울 관악을 지역구였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 후보로 나선 사람, 바로 김종인 전 대표였습니다. 서강대 교수 출신에 제11, 12대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 노태우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 등 이력도 화려했습니다.
김 대표는 선거 공보물에서 "경제민주화 완결을 위해, 관악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할 인물"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에도 '사회보장과 재분배 확장에 관여', '서민을 대변해 경제민주화 완결' 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지역구에서 야당인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선 사람이 이해찬 민주당 대표입니다. 당시 36살의 '청년 정치인'이던 이 대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 부위원장 등 민주화 운동 관련 경력을 대표 경력으로 기재했습니다.
권력형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자 처벌, 서민생계 보장, 자주외교와 평화통일, 여성지위 향상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싸워온 사람, 지극히 겸손한 사람, 정확한 판단력과 탁월한 이론으로 민주화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라고 소개도 했습니다.
선거 결과, 어땠을까요?
3만9,950표, 31.1%의 지지를 얻은 이 대표가 27.1%에 그친 김 전 대표를 제치고 당선됐습니다. 훗날 7선 의원에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여당 대표를 지내게 된 '정치인 이해찬'의 첫 국회 입성이었습니다.
"선거 위한 정치적 결단…이해찬 컷오프"
두 사람의 두 번째 악연, 4년 전인 2016년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 등이 탈당하면서 당내 분란으로 혼란스럽던 더불어민주당에 김종인 전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장합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결단이었습니다.
공천의 전권을 쥐게 된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 대표. '공천 학살'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물갈이'에 나섰습니다. 당의 '공격수' 역할을 자임하던 강기정, 정청래 의원은 물론 당의 중진인 문희상, 신계륜 의원이 줄줄이 '컷오프', 공천 배제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16년 3월, 이해찬 의원의 민주당 탈당·20대 총선 무소속 출마 기자회견
'물갈이'의 절정은 당시 당내 주류세력이던 '친노(親盧)' 그룹의 좌장, 이해찬 의원의 '컷오프'였습니다.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던 김종인 당시 대표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성수 당시 당 대변인은 "비대위의 결정은 총선 승리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해찬 의원, 김 대표의 주도로 이뤄진 이 같은 결정에 불복했습니다. "이유와 근거가 없다. 도덕성이든 경쟁력이든 의정활동 평가든, 합당한 명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 대표를 비난도 했습니다.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서 "공당의 결정은 명분이 있어야 하며, 합의된 방식에 따라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습니다. '무소속' 이해찬 후보, 세종시 지역구에서 4만6,187표, 43.7%의 득표율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보란듯 민주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아는대로입니다. 김종인 대표는 2017년 3월, "경제민주화 법안 등 개혁입법 처리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을 느꼈다"면서 민주당 입성 13개월 만에 탈당했습니다. '돌아온' 이해찬 의원은 2018년 8월 당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이번엔 '선거 사령탑'으로…세 번째의 결과는?
이해찬 대표와 김종인 전 대표의 세 번째 만남. 이번에는 둘 다 '사령탑'으로서의 조우입니다. 이 대표는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김 전 대표는 통합당의 총괄선대위원장입니다.
29일 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첫 공식일정, 기자회견 모습
통합당이 김 전 대표를 영입하려 한다는 소식은 올해 초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식석상에서 한 번도 김 전 대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 뿐만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김 전 대표의 통합당 행에 대해 아무런 공식적인 말이 없습니다.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민주당의 반응입니다.
반면, 김종인 전 대표, 등장하자마자 100조 원 규모의 '코로나 비상대책 예산' 확보를 제안했습니다. '국회의석 과반 정당을 만들겠다'면서 선거판 흔들기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도 한 사람이 축배를 들면, 다른 한 사람은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거듭 얽혀온 두 사람의 인연, 혹은 악연. 이번에는 어떤 결과로 끝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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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심야심] 이해찬-김종인, 32년만에 총선에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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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0-03-30 08:27:12
- 수정2020-03-30 08:56:09
'킹메이커', '차르'(러시아 절대군주).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다시 정치권에 복귀했습니다. 이번에는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입니다.
2012년에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총선 승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고,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지휘했던 김 전 대표. 이번에는 또다시 미래통합당에 합류했습니다.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선거 때마다 승리를 이끌어낸 그의 독특한 정치 이력만큼 주목받는 게 또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의 인연(因緣), 굳이 말하자면 '악연(惡緣)'에 가까운 인연입니다.
학생운동권 출신의 '청양면장댁 셋째 아들' 이 대표와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대학교수와 장관 등을 지낸 김 전 대표.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던 두 사람의 인연, 악연은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시작됩니다.
지역구 선거 맞대결…이해찬의 승리
1987년 6.10 민주화항쟁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13대 총선의 서울 관악을 지역구였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 후보로 나선 사람, 바로 김종인 전 대표였습니다. 서강대 교수 출신에 제11, 12대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 노태우 대통령 취임 준비위원 등 이력도 화려했습니다.
김 대표는 선거 공보물에서 "경제민주화 완결을 위해, 관악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할 인물"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에도 '사회보장과 재분배 확장에 관여', '서민을 대변해 경제민주화 완결' 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지역구에서 야당인 평화민주당 후보로 나선 사람이 이해찬 민주당 대표입니다. 당시 36살의 '청년 정치인'이던 이 대표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 서울대 복학생협의회장,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 부위원장 등 민주화 운동 관련 경력을 대표 경력으로 기재했습니다.
권력형 부정부패 척결과 관련자 처벌, 서민생계 보장, 자주외교와 평화통일, 여성지위 향상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싸워온 사람, 지극히 겸손한 사람, 정확한 판단력과 탁월한 이론으로 민주화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라고 소개도 했습니다.
선거 결과, 어땠을까요?
3만9,950표, 31.1%의 지지를 얻은 이 대표가 27.1%에 그친 김 전 대표를 제치고 당선됐습니다. 훗날 7선 의원에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 여당 대표를 지내게 된 '정치인 이해찬'의 첫 국회 입성이었습니다.
"선거 위한 정치적 결단…이해찬 컷오프"
두 사람의 두 번째 악연, 4년 전인 2016년입니다. 안철수 전 대표 등이 탈당하면서 당내 분란으로 혼란스럽던 더불어민주당에 김종인 전 대표가 구원투수로 등장합니다. 총선 승리를 위한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결단이었습니다.
공천의 전권을 쥐게 된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 대표. '공천 학살'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물갈이'에 나섰습니다. 당의 '공격수' 역할을 자임하던 강기정, 정청래 의원은 물론 당의 중진인 문희상, 신계륜 의원이 줄줄이 '컷오프', 공천 배제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물갈이'의 절정은 당시 당내 주류세력이던 '친노(親盧)' 그룹의 좌장, 이해찬 의원의 '컷오프'였습니다.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던 김종인 당시 대표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성수 당시 당 대변인은 "비대위의 결정은 총선 승리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해찬 의원, 김 대표의 주도로 이뤄진 이 같은 결정에 불복했습니다. "이유와 근거가 없다. 도덕성이든 경쟁력이든 의정활동 평가든, 합당한 명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김 대표를 비난도 했습니다.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서 "공당의 결정은 명분이 있어야 하며, 합의된 방식에 따라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습니다. '무소속' 이해찬 후보, 세종시 지역구에서 4만6,187표, 43.7%의 득표율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보란듯 민주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결과는 모두가 아는대로입니다. 김종인 대표는 2017년 3월, "경제민주화 법안 등 개혁입법 처리 과정에서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을 느꼈다"면서 민주당 입성 13개월 만에 탈당했습니다. '돌아온' 이해찬 의원은 2018년 8월 당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이번엔 '선거 사령탑'으로…세 번째의 결과는?
이해찬 대표와 김종인 전 대표의 세 번째 만남. 이번에는 둘 다 '사령탑'으로서의 조우입니다. 이 대표는 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김 전 대표는 통합당의 총괄선대위원장입니다.
통합당이 김 전 대표를 영입하려 한다는 소식은 올해 초부터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식석상에서 한 번도 김 전 대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 뿐만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김 전 대표의 통합당 행에 대해 아무런 공식적인 말이 없습니다.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민주당의 반응입니다.
반면, 김종인 전 대표, 등장하자마자 100조 원 규모의 '코로나 비상대책 예산' 확보를 제안했습니다. '국회의석 과반 정당을 만들겠다'면서 선거판 흔들기에 나섰습니다.
이번에도 한 사람이 축배를 들면, 다른 한 사람은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거듭 얽혀온 두 사람의 인연, 혹은 악연. 이번에는 어떤 결과로 끝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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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흠 기자 jote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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