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감시K] ‘이태리’→‘이탈리아’…한 글자 고치고 500만 원?
입력 2019.12.12 (07:00)
수정 2020.02.2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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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를 돌아보고 내년에 구성되는 21대 국회의 미래를 그려보는 기획 보도, 지난 10일에 이어 이번에도 국회의원들의 세비 지출을 점검해 봅니다.
[연관기사] [국회감시K] 의원님과 침대 매트리스
올해 국회의원 1인당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은 2,700만 원입니다. 의원들은 이 예산 일부로 소규모 연구용역을 맡깁니다. 정책 개발에 도움을 얻기 위해 전문 분야 연구를 외부에 의뢰한 뒤 보고서를 받는 겁니다. 보고서 한 건당 최대로 지급할 수 있는 돈은 500만 원. 알찬 의정 활동을 하라며 지원하는 세비입니다.
국회 전체에서 실제로 연구용역보고서에 집행하는 금액은 해마다 10억 원을 조금 웃돕니다. 국회 예산 항목 가운데는 비교적 소액이어서 꼼꼼히 챙겨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알아서 쓰겠거니, 할 뿐입니다. 그런데 과연 500만 원 값어치를 하는 내용일까요? KBS가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보안장비 업체, 통화위기 해법을 제시하다?
20대 국회의원들이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모두 800여 건. 올해 발주된 용역 수행자 목록을 들여다보자니, 교수와 시민단체 이름 사이로 생경한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테크', 무슨 기술회사 같은데…작성한 용역 보고서 목록이 의아합니다.
〈유럽통합 이후 통화·재정 위기와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제를 위한 제언〉 (2018년 11월~2019년 4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경제고용 지표에 대한 평가와 대안 제시〉 (2018년 7월~2019년 1월)
〈경남의 웰니스 관광 클러스터 사업과 연계한 양산시의 의생명 특화단지 발전 방안〉 (2019년 5월~6월)
모두 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이 의뢰한 보고서입니다. 대체 뭘 하는 회사길래 비슷한 시기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망라해 용역 보고서를 작성했을까요? 찾아가 봤습니다.
정체불명의 보안장비 업체 대표 이 모 씨의 설명, 본인이 '전문가'라는 겁니다.
"보안장비 회사 대표로 있지만 사실 원래 정치권에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만 7년을 했고 장관 정책보좌관도 3년 하고, 10년 동안 정책 관련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책 개발이나 이런 건 나름대로 자신 있는 분야입니다. 윤영석 의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조사해 달라고 의뢰해서 해드렸습니다."
윤영석 의원 역시 비슷하게 설명했습니다.
"알고 지낸 지는 몇 년 됐는데, 정책개발 쪽으로 상당히 유명하고 능력 있는 분이에요, 정책 연구는 사실 교수보다 실무 경험 있는 분들이 훨씬 나아요. 보고서 내용은 실제로 상당히 충실한 것으로 봤습니다."
표절률 96%…이 정도면 'Ctrl+C, V'?
사실일까? 이 업체가 작성한 용역보고서 3건의 원문을 확보해 표절 검사를 해봤습니다. 먼저 〈유럽통합 이후 통화 재정 위기〉 관련 보고서, 표절률 96%. 한 사회과학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자료를 그대로 베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약간 손 본 부분도 있긴 합니다. '이루어져 왔다. 이에 비해'를 '이루어져 왔는데 비해'로 수정하거나 '이태리'를 '이탈리아'로 수정했습니다.
다음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경제고용 지표〉 보고서. 표절률 77%입니다. 역시 같은 사회과학 연구소 토론회 자료집에서 '복사하기', '붙이기'로 가져온 문장이 태반입니다. 마지막으로 〈경남의 웰니스 관광 클러스터 사업과 연계한 양산시의 의생명 특화 단지〉 관련 보고서. 표절률은 51%. 이번에는 양산시청 홈페이지 자료와 지역 언론, 지역 대학 자료 등을 여기저기서 따왔습니다.
윤영석 "생각도 못 한 일…세비는 즉시 반납"
윤영석 의원은 용역 보고서 표절에 대한 입장을 묻는 KBS 취재에 "전혀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그러고서는 표절 검사지와 참고 자료를 확인하고, 세 시간 만에 국회 사무처에 보고서 3건에 대한 세비 1,200만 원을 반환했다고 밝혔습니다.
윤 의원은 "표절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서 "생각도 못 했다.", "믿고 맡겼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서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또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 사무처에 정책 보고서 표절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촉구했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의원실 용역 '무더기 수주'한 연구소
국회의원 연구용역 수행자 목록에서 눈에 띈 또 하나의 이름, '연구소○○'입니다. 지난해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용역만 8건을 수주했습니다. 사무실은 국회에서 불과 200m 거리. 무슨 인연일까? 연구자 명단을 살펴봤습니다.
강○○ (연구소 대표이사, 전 국회의원 보좌관, 전 국회 부의장 비서관)
신○○ (책임연구원, ○○전문대학 교수, 전 국회의원 비서관)
권○○ (연구소장, 전 국회의장 비서관)
이○○ (연구기획실장, 전 국회의원 보좌관)
문○○ (자문위원, 변호사, 전 국회의원 비서관)
대부분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 출신. 검색해보니 민주당 의원실 출신입니다. 연구소 강모 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법안도 잘 만들고 통과도 많이 시켰던 보좌관이었다" "제가 다 추진하기 어려워서 다른 방에 나눠 드리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역시 '전문성'을 내세웁니다.
의원 연구용역 보고서는 '편집의 예술'?
이번에는 사실일까? 다시 표절 검사를 해봤습니다. 올해 6월 작성된 〈안산 상록구를 비롯한 구도심 주택 밀집 지역 주차난 해소 대책〉. 민주당 김철민 의원이 의뢰한 보고서입니다. 표절률은 75%. 표절 대상 원문 자료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정구 등 구도심 주택 밀집 지역 주차난 해소 대책〉. 지난해, 성남시 의뢰로 지역사회연구원 등이 참여해 만든 용역 보고서입니다. 내용은 물론이고, 심지어 표지 디자인까지 똑같습니다.
올해 6월 제출된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복지에 대한 정책 검토〉 보고서. 민주당 이규희 의원실 용역 보고서인데 표절률 86%입니다. 2014년 8월, 신기남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작성한 〈공공임대주택 운영관리방안 연구〉에서 3분의 2가량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급하게 편집했는지 '~했음'체의 보고서 중간에 느닷없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끼어있습니다. 웃지 못할 대목도 눈에 띕니다. 공공임대주택 관리 제도의 역사와 문제점을 한참 서술하던 중 갑자기 '맞춤법검사기 결과영역'이라는 문구가 툭 튀어나옵니다. 편집하고 맞춤법 검사하기도 시간이 빠듯했던 걸까요?
올해 2월 작성된 〈산지관리제도의 분석과 입법과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도 살펴봤습니다. 역시 민주당 이규희 의원이 의뢰한 용역입니다. 표절률 54%. 모 지역 사립대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에서 상당 부분을 따왔습니다
3건의 표절 보고서를 담당한 책임 연구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불찰을 인정한다면서도 "초안은 제가 만들었지만 공동 연구팀의 검증이나 보완 절차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관에서 의뢰하는 연구는 용역비가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쯤 되고 잘못 만들면 사고도 나니까 교수들도 신경을 쓰는 편"이라며 "의원 용역은 소액인 데다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아 분량은 채워야 하니 표절 시비가 걸릴 만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습니다.
김철민 "바로 반납…법적 대응 검토"·이규희 "세비 반납 여부 협의 중"
김철민 의원과 이규희 의원은 KBS 취재에 모두 "표절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김철민 의원은 지역구인 안산 상록구에 낡은 다세대 주택이 많고 주차 문제가 심각해 입법 토론회를 여는 등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왔다면서 이 과정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표절 보고서라는 사실을 안 뒤, 문제의 연구소에서 용역비 400만 원을 돌려받아 국회 사무처에 반납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용역 계약서상의 '신의성실 원칙' 위반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규희 의원은 소속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 활동을 위해 산지관리 제도와 공공임대주택 문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지만,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표절 여부를 정밀하게 검토 중이라면서, 해당 연구소 측과 용역비 반납 여부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연관기사] [국회감시K] 의원님과 침대 매트리스
올해 국회의원 1인당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은 2,700만 원입니다. 의원들은 이 예산 일부로 소규모 연구용역을 맡깁니다. 정책 개발에 도움을 얻기 위해 전문 분야 연구를 외부에 의뢰한 뒤 보고서를 받는 겁니다. 보고서 한 건당 최대로 지급할 수 있는 돈은 500만 원. 알찬 의정 활동을 하라며 지원하는 세비입니다.
국회 전체에서 실제로 연구용역보고서에 집행하는 금액은 해마다 10억 원을 조금 웃돕니다. 국회 예산 항목 가운데는 비교적 소액이어서 꼼꼼히 챙겨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알아서 쓰겠거니, 할 뿐입니다. 그런데 과연 500만 원 값어치를 하는 내용일까요? KBS가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보안장비 업체, 통화위기 해법을 제시하다?
20대 국회의원들이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모두 800여 건. 올해 발주된 용역 수행자 목록을 들여다보자니, 교수와 시민단체 이름 사이로 생경한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테크', 무슨 기술회사 같은데…작성한 용역 보고서 목록이 의아합니다.
〈유럽통합 이후 통화·재정 위기와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제를 위한 제언〉 (2018년 11월~2019년 4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경제고용 지표에 대한 평가와 대안 제시〉 (2018년 7월~2019년 1월)
〈경남의 웰니스 관광 클러스터 사업과 연계한 양산시의 의생명 특화단지 발전 방안〉 (2019년 5월~6월)
모두 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이 의뢰한 보고서입니다. 대체 뭘 하는 회사길래 비슷한 시기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망라해 용역 보고서를 작성했을까요? 찾아가 봤습니다.
윤영석 의원의 정책 연구용역 3건을 수주한 서울 여의도에 있는 영상보안장비 회사
정체불명의 보안장비 업체 대표 이 모 씨의 설명, 본인이 '전문가'라는 겁니다.
"보안장비 회사 대표로 있지만 사실 원래 정치권에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만 7년을 했고 장관 정책보좌관도 3년 하고, 10년 동안 정책 관련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책 개발이나 이런 건 나름대로 자신 있는 분야입니다. 윤영석 의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조사해 달라고 의뢰해서 해드렸습니다."
윤영석 의원 역시 비슷하게 설명했습니다.
"알고 지낸 지는 몇 년 됐는데, 정책개발 쪽으로 상당히 유명하고 능력 있는 분이에요, 정책 연구는 사실 교수보다 실무 경험 있는 분들이 훨씬 나아요. 보고서 내용은 실제로 상당히 충실한 것으로 봤습니다."
표절률 96%…이 정도면 'Ctrl+C, V'?
사실일까? 이 업체가 작성한 용역보고서 3건의 원문을 확보해 표절 검사를 해봤습니다. 먼저 〈유럽통합 이후 통화 재정 위기〉 관련 보고서, 표절률 96%. 한 사회과학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자료를 그대로 베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약간 손 본 부분도 있긴 합니다. '이루어져 왔다. 이에 비해'를 '이루어져 왔는데 비해'로 수정하거나 '이태리'를 '이탈리아'로 수정했습니다.
좌측이 표절대상 자료, 우측은 의원 용역 보고서
다음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경제고용 지표〉 보고서. 표절률 77%입니다. 역시 같은 사회과학 연구소 토론회 자료집에서 '복사하기', '붙이기'로 가져온 문장이 태반입니다. 마지막으로 〈경남의 웰니스 관광 클러스터 사업과 연계한 양산시의 의생명 특화 단지〉 관련 보고서. 표절률은 51%. 이번에는 양산시청 홈페이지 자료와 지역 언론, 지역 대학 자료 등을 여기저기서 따왔습니다.
윤영석 "생각도 못 한 일…세비는 즉시 반납"
윤영석 의원은 용역 보고서 표절에 대한 입장을 묻는 KBS 취재에 "전혀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그러고서는 표절 검사지와 참고 자료를 확인하고, 세 시간 만에 국회 사무처에 보고서 3건에 대한 세비 1,200만 원을 반환했다고 밝혔습니다.
윤 의원은 "표절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서 "생각도 못 했다.", "믿고 맡겼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서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또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 사무처에 정책 보고서 표절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촉구했다"고 했습니다.
윤영석 의원실에서 국회 사무처에 세비 11,998,800원을 반납하고 받은 영수증
민주당 의원실 용역 '무더기 수주'한 연구소
국회의원 연구용역 수행자 목록에서 눈에 띈 또 하나의 이름, '연구소○○'입니다. 지난해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용역만 8건을 수주했습니다. 사무실은 국회에서 불과 200m 거리. 무슨 인연일까? 연구자 명단을 살펴봤습니다.
강○○ (연구소 대표이사, 전 국회의원 보좌관, 전 국회 부의장 비서관)
신○○ (책임연구원, ○○전문대학 교수, 전 국회의원 비서관)
권○○ (연구소장, 전 국회의장 비서관)
이○○ (연구기획실장, 전 국회의원 보좌관)
문○○ (자문위원, 변호사, 전 국회의원 비서관)
대부분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 출신. 검색해보니 민주당 의원실 출신입니다. 연구소 강모 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법안도 잘 만들고 통과도 많이 시켰던 보좌관이었다" "제가 다 추진하기 어려워서 다른 방에 나눠 드리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역시 '전문성'을 내세웁니다.
의원 연구용역 보고서는 '편집의 예술'?
이번에는 사실일까? 다시 표절 검사를 해봤습니다. 올해 6월 작성된 〈안산 상록구를 비롯한 구도심 주택 밀집 지역 주차난 해소 대책〉. 민주당 김철민 의원이 의뢰한 보고서입니다. 표절률은 75%. 표절 대상 원문 자료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정구 등 구도심 주택 밀집 지역 주차난 해소 대책〉. 지난해, 성남시 의뢰로 지역사회연구원 등이 참여해 만든 용역 보고서입니다. 내용은 물론이고, 심지어 표지 디자인까지 똑같습니다.
좌측이 표절대상 자료, 우측이 의원 용역 보고서
올해 6월 제출된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복지에 대한 정책 검토〉 보고서. 민주당 이규희 의원실 용역 보고서인데 표절률 86%입니다. 2014년 8월, 신기남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작성한 〈공공임대주택 운영관리방안 연구〉에서 3분의 2가량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급하게 편집했는지 '~했음'체의 보고서 중간에 느닷없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끼어있습니다. 웃지 못할 대목도 눈에 띕니다. 공공임대주택 관리 제도의 역사와 문제점을 한참 서술하던 중 갑자기 '맞춤법검사기 결과영역'이라는 문구가 툭 튀어나옵니다. 편집하고 맞춤법 검사하기도 시간이 빠듯했던 걸까요?
표절 보고서 중간에서 ‘맞춤법검사기 결과영역’ 문구가 발견됐다.
올해 2월 작성된 〈산지관리제도의 분석과 입법과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도 살펴봤습니다. 역시 민주당 이규희 의원이 의뢰한 용역입니다. 표절률 54%. 모 지역 사립대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에서 상당 부분을 따왔습니다
3건의 표절 보고서를 담당한 책임 연구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불찰을 인정한다면서도 "초안은 제가 만들었지만 공동 연구팀의 검증이나 보완 절차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관에서 의뢰하는 연구는 용역비가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쯤 되고 잘못 만들면 사고도 나니까 교수들도 신경을 쓰는 편"이라며 "의원 용역은 소액인 데다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아 분량은 채워야 하니 표절 시비가 걸릴 만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습니다.
김철민 "바로 반납…법적 대응 검토"·이규희 "세비 반납 여부 협의 중"
김철민 의원과 이규희 의원은 KBS 취재에 모두 "표절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김철민 의원은 지역구인 안산 상록구에 낡은 다세대 주택이 많고 주차 문제가 심각해 입법 토론회를 여는 등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왔다면서 이 과정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표절 보고서라는 사실을 안 뒤, 문제의 연구소에서 용역비 400만 원을 돌려받아 국회 사무처에 반납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용역 계약서상의 '신의성실 원칙' 위반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습니다.
김철민 의원실에서 국회 사무처에 정책개발 용역비 400만 원을 반납한 영수증
이규희 의원은 소속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 활동을 위해 산지관리 제도와 공공임대주택 문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지만,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표절 여부를 정밀하게 검토 중이라면서, 해당 연구소 측과 용역비 반납 여부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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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감시K] ‘이태리’→‘이탈리아’…한 글자 고치고 5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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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12-12 07:00:17
- 수정2020-02-28 13:39:53
20대 국회를 돌아보고 내년에 구성되는 21대 국회의 미래를 그려보는 기획 보도, 지난 10일에 이어 이번에도 국회의원들의 세비 지출을 점검해 봅니다.
[연관기사] [국회감시K] 의원님과 침대 매트리스
올해 국회의원 1인당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은 2,700만 원입니다. 의원들은 이 예산 일부로 소규모 연구용역을 맡깁니다. 정책 개발에 도움을 얻기 위해 전문 분야 연구를 외부에 의뢰한 뒤 보고서를 받는 겁니다. 보고서 한 건당 최대로 지급할 수 있는 돈은 500만 원. 알찬 의정 활동을 하라며 지원하는 세비입니다.
국회 전체에서 실제로 연구용역보고서에 집행하는 금액은 해마다 10억 원을 조금 웃돕니다. 국회 예산 항목 가운데는 비교적 소액이어서 꼼꼼히 챙겨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알아서 쓰겠거니, 할 뿐입니다. 그런데 과연 500만 원 값어치를 하는 내용일까요? KBS가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보안장비 업체, 통화위기 해법을 제시하다?
20대 국회의원들이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는 모두 800여 건. 올해 발주된 용역 수행자 목록을 들여다보자니, 교수와 시민단체 이름 사이로 생경한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테크', 무슨 기술회사 같은데…작성한 용역 보고서 목록이 의아합니다.
〈유럽통합 이후 통화·재정 위기와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제를 위한 제언〉 (2018년 11월~2019년 4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경제고용 지표에 대한 평가와 대안 제시〉 (2018년 7월~2019년 1월)
〈경남의 웰니스 관광 클러스터 사업과 연계한 양산시의 의생명 특화단지 발전 방안〉 (2019년 5월~6월)
모두 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이 의뢰한 보고서입니다. 대체 뭘 하는 회사길래 비슷한 시기에 이렇게 다양한 주제를 망라해 용역 보고서를 작성했을까요? 찾아가 봤습니다.
정체불명의 보안장비 업체 대표 이 모 씨의 설명, 본인이 '전문가'라는 겁니다.
"보안장비 회사 대표로 있지만 사실 원래 정치권에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관만 7년을 했고 장관 정책보좌관도 3년 하고, 10년 동안 정책 관련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책 개발이나 이런 건 나름대로 자신 있는 분야입니다. 윤영석 의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조사해 달라고 의뢰해서 해드렸습니다."
윤영석 의원 역시 비슷하게 설명했습니다.
"알고 지낸 지는 몇 년 됐는데, 정책개발 쪽으로 상당히 유명하고 능력 있는 분이에요, 정책 연구는 사실 교수보다 실무 경험 있는 분들이 훨씬 나아요. 보고서 내용은 실제로 상당히 충실한 것으로 봤습니다."
표절률 96%…이 정도면 'Ctrl+C, V'?
사실일까? 이 업체가 작성한 용역보고서 3건의 원문을 확보해 표절 검사를 해봤습니다. 먼저 〈유럽통합 이후 통화 재정 위기〉 관련 보고서, 표절률 96%. 한 사회과학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자료를 그대로 베꼈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약간 손 본 부분도 있긴 합니다. '이루어져 왔다. 이에 비해'를 '이루어져 왔는데 비해'로 수정하거나 '이태리'를 '이탈리아'로 수정했습니다.
다음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경제고용 지표〉 보고서. 표절률 77%입니다. 역시 같은 사회과학 연구소 토론회 자료집에서 '복사하기', '붙이기'로 가져온 문장이 태반입니다. 마지막으로 〈경남의 웰니스 관광 클러스터 사업과 연계한 양산시의 의생명 특화 단지〉 관련 보고서. 표절률은 51%. 이번에는 양산시청 홈페이지 자료와 지역 언론, 지역 대학 자료 등을 여기저기서 따왔습니다.
윤영석 "생각도 못 한 일…세비는 즉시 반납"
윤영석 의원은 용역 보고서 표절에 대한 입장을 묻는 KBS 취재에 "전혀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그러고서는 표절 검사지와 참고 자료를 확인하고, 세 시간 만에 국회 사무처에 보고서 3건에 대한 세비 1,200만 원을 반환했다고 밝혔습니다.
윤 의원은 "표절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서 "생각도 못 했다.", "믿고 맡겼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서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또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회 사무처에 정책 보고서 표절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촉구했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의원실 용역 '무더기 수주'한 연구소
국회의원 연구용역 수행자 목록에서 눈에 띈 또 하나의 이름, '연구소○○'입니다. 지난해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용역만 8건을 수주했습니다. 사무실은 국회에서 불과 200m 거리. 무슨 인연일까? 연구자 명단을 살펴봤습니다.
강○○ (연구소 대표이사, 전 국회의원 보좌관, 전 국회 부의장 비서관)
신○○ (책임연구원, ○○전문대학 교수, 전 국회의원 비서관)
권○○ (연구소장, 전 국회의장 비서관)
이○○ (연구기획실장, 전 국회의원 보좌관)
문○○ (자문위원, 변호사, 전 국회의원 비서관)
대부분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비서관 출신. 검색해보니 민주당 의원실 출신입니다. 연구소 강모 대표는 KBS와의 통화에서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법안도 잘 만들고 통과도 많이 시켰던 보좌관이었다" "제가 다 추진하기 어려워서 다른 방에 나눠 드리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역시 '전문성'을 내세웁니다.
의원 연구용역 보고서는 '편집의 예술'?
이번에는 사실일까? 다시 표절 검사를 해봤습니다. 올해 6월 작성된 〈안산 상록구를 비롯한 구도심 주택 밀집 지역 주차난 해소 대책〉. 민주당 김철민 의원이 의뢰한 보고서입니다. 표절률은 75%. 표절 대상 원문 자료 제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정구 등 구도심 주택 밀집 지역 주차난 해소 대책〉. 지난해, 성남시 의뢰로 지역사회연구원 등이 참여해 만든 용역 보고서입니다. 내용은 물론이고, 심지어 표지 디자인까지 똑같습니다.
올해 6월 제출된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복지에 대한 정책 검토〉 보고서. 민주당 이규희 의원실 용역 보고서인데 표절률 86%입니다. 2014년 8월, 신기남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서 작성한 〈공공임대주택 운영관리방안 연구〉에서 3분의 2가량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급하게 편집했는지 '~했음'체의 보고서 중간에 느닷없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끼어있습니다. 웃지 못할 대목도 눈에 띕니다. 공공임대주택 관리 제도의 역사와 문제점을 한참 서술하던 중 갑자기 '맞춤법검사기 결과영역'이라는 문구가 툭 튀어나옵니다. 편집하고 맞춤법 검사하기도 시간이 빠듯했던 걸까요?
올해 2월 작성된 〈산지관리제도의 분석과 입법과제에 관한 연구〉 보고서도 살펴봤습니다. 역시 민주당 이규희 의원이 의뢰한 용역입니다. 표절률 54%. 모 지역 사립대 석사 논문과 박사 논문에서 상당 부분을 따왔습니다
3건의 표절 보고서를 담당한 책임 연구원은 KBS와의 통화에서 불찰을 인정한다면서도 "초안은 제가 만들었지만 공동 연구팀의 검증이나 보완 절차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관에서 의뢰하는 연구는 용역비가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쯤 되고 잘못 만들면 사고도 나니까 교수들도 신경을 쓰는 편"이라며 "의원 용역은 소액인 데다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아 분량은 채워야 하니 표절 시비가 걸릴 만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습니다.
김철민 "바로 반납…법적 대응 검토"·이규희 "세비 반납 여부 협의 중"
김철민 의원과 이규희 의원은 KBS 취재에 모두 "표절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김철민 의원은 지역구인 안산 상록구에 낡은 다세대 주택이 많고 주차 문제가 심각해 입법 토론회를 여는 등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왔다면서 이 과정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표절 보고서라는 사실을 안 뒤, 문제의 연구소에서 용역비 400만 원을 돌려받아 국회 사무처에 반납 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용역 계약서상의 '신의성실 원칙' 위반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규희 의원은 소속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 활동을 위해 산지관리 제도와 공공임대주택 문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지만,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현재 표절 여부를 정밀하게 검토 중이라면서, 해당 연구소 측과 용역비 반납 여부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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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윤정 기자 watchdo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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