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인의 포로와 생포 북한군…그들은 한국에 올 수 있을까 [뒷北뉴스]

입력 2025.01.18 (07:00) 수정 2025.01.1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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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나고 뜻밖의 결정을 한 포로 76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남과 북이 아닌 제3국행을 원했습니다. 이념 갈등이 없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 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에서 포로로 잡힌 주인공 '명준'은 남북의 설득에도 끝내 중립국 행을 택하지요.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소피 소령(이영애 扮)은 당시 스위스행을 택한 인민군 포로의 딸이라는 설정입니다.

70여 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낸 건 우크라이나에 생포된 북한군의 신병 처리와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당시 포로들이 제3국으로 흩어진 과정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중립국 송환위원회가 꾸려져 포로 신병 처리 문제를 담당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런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합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한국계 스위스인 역할을 맡았던 이영애 배우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한국계 스위스인 역할을 맡았던 이영애 배우

■ 그들은 '유령 군인'인가

먼저 우크라이나 전선에 가 있는 북한군의 국제법적 지위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 갈래입니다. ① 러시아군. ② 북한군. ③ 용병. 생포 북한군은 ▲ 러시아 군복을 입고 ▲ 러시아군 인식표(신분증)를 갖고 있어 국제 관습법상 ①로 볼 여지가 있지만 ▲ 본인 소속을 '북한 정찰총국'으로 밝히고 ▲ 러시아가 자국 군으로 인정하지 않는 점 때문에 완벽히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로서는 ②(북한군)로 보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 이게 더 힘듭니다. 북한은 외교적 압박 우려 때문에 파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공동 교전국(둘 이상의 국가가 특정 전쟁에 참여했을 때 부여하는 지위)이 아니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북한은 교전 당사국이 아닙니다. 국제 규약으로는 '생뚱맞게 전선에서 발견된 외국군'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③(용병)은 어떨까요. 국제 협약상 용병으로 인정되려면 사적 이익을 얻을 목적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해서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①, ②, ③ 모두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 러시아 군복과 물건들을 배급받고 있다.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 러시아 군복과 물건들을 배급받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 측은 본인들의 입장 표명 없이도 우크라이나가 알아서 '러시아 군으로 여겨주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군 병사들에 러시아 군복을 입히고, 본인이 아닌 러시아 연방의 자치 공화국(투바) 남성의 신분증을 소지하도록 한 게 증거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파병 사실을 감출 수 있고, 포로 교환을 하더라도 일단 러시아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 北 포로 '전략적 활용'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그 의도대로 움직여줄 리는 없죠. 여론전에 능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군 포로 영상을 공개하면서 본인의 SNS에 한글로 "김정은이 러시아에 억류된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와 북한 군인의 교환을 조직(추진)할 수 있을 경우에만 북한 군인을 김정은에게 넘겨줄 준비가 돼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포로 교환'을 협상할 당사자는 러시아지만, 이들의 신병 문제를 러시아가 아닌 북한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입니다.

생포한 북한군을 공개해 국제 사회에 북한 참전 사실을 확인시키고, 추가 파병을 막는 '다목적 카드'로 쓴 셈입니다. 사실 포로 영상을 공개하는 건 제네바 협약 13조 위반(전쟁 포로는 항상 보호돼야 하며, 폭력이나 위협 행위, 모욕 및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이라 떳떳하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생포된 북한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뜻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을 시찰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우크라이나 전선을 시찰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아가 "귀환을 원하지 않는 북한 병사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제3국 송환 가능성을 열어둔 건데요. 이들을 우리나라로 데려오기 위해선 여러 가정을 덧붙여야 합니다.

■ '한국행' 강하게 원해야 송환길 열려

첫번째 가정은 이들이 전쟁 포로로 인정될 때입니다. 물론 러시아와 북한이 이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낮은 확률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전쟁 포로가 되면 제네바 협약에 따라 본국(러시아 혹은 북한) 송환이 원칙인데, 여기서 인도적 구호 기관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개입할 수 있습니다.

ICRC 규정은 포로가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기본권 침해 위협이 있으면 송환 의무의 예외를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독재와 인권 탄압 국가이기 때문에, '본국 송환 원칙'을 깨트릴 수 있는 겁니다. 이걸 근거로 '북한군은 원하는 나라로 보내준다'라는 합의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맺어진다면 국내 송환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군에 생포된 북한군 [KBS 보도 캡처]우크라이나 군에 생포된 북한군 [KBS 보도 캡처]

두번째 가정으로, 이들이 전쟁 포로로 끝내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사실 이럴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더 크긴 합니다. 이들은 국제법상 '불법 전투원'으로 간주되고 우크라이나 국내법에 따라 살인죄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한국행을 강하게 원한다면 우리 정부가 끼어들 틈이 생기게 됩니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적용해 국내로 데려오는 방법입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 헌법상 우리나라 국민인 점 ▲ 북한 정권이 참전이 아니라 훈련이라고 속인 점 ▲ 우크라이나 군인을 살상할 의도가 없었던 점 등을 우크라이나와 협상 논리로 내세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엄연히 '범죄인'으로 데려오는 만큼, 한국에서 유·무죄 선고 등 형식적인 사법 절차를 거쳐야 하긴 합니다.

■ 스무 살 한반도 청년의 운명은

결국 고차 방정식입니다. 북한군 포로의 신병 처리 문제에는 전쟁의 두 주요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뿐만 아니라 파병국인 북한, 우크라이나의 간접 지원국인 한국 등 4개국을 비롯해 여러 법적·절차적 문제가 걸려있습니다.

변상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군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선적 관할권을 갖게 되므로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협의해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김정은과 북한 정권을 '전쟁 범죄 공범'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방안도 고려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에 생포된 북한군 [KBS 보도 캡처]우크라이나 군에 생포된 북한군 [KBS 보도 캡처]

소설 <광장> 속 명준은 번민하다가 중립국을 가는 배 위에서 끝내 몸을 던집니다. 20살, 26살의 두 북한 군인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행을 선택할까요. 그렇다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한반도의 청년들은 70여 년 만에 다시 잔인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 기사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이슈브리프: 러시아 파병 북한군의 국제법상 지위와 고려사항(변상정)>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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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1-18 07:00:24
    • 수정2025-01-18 09: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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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끝나고 뜻밖의 결정을 한 포로 76명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남과 북이 아닌 제3국행을 원했습니다. 이념 갈등이 없는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려 했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으로 흩어졌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문학작품·영화의 단골 소재입니다. 소설가 최인훈의 <광장>에서 포로로 잡힌 주인공 '명준'은 남북의 설득에도 끝내 중립국 행을 택하지요.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의 소피 소령(이영애 扮)은 당시 스위스행을 택한 인민군 포로의 딸이라는 설정입니다.

70여 년 전 이야기를 끄집어낸 건 우크라이나에 생포된 북한군의 신병 처리와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당시 포로들이 제3국으로 흩어진 과정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중립국 송환위원회가 꾸려져 포로 신병 처리 문제를 담당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이런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야 합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한국계 스위스인 역할을 맡았던 이영애 배우
■ 그들은 '유령 군인'인가

먼저 우크라이나 전선에 가 있는 북한군의 국제법적 지위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 갈래입니다. ① 러시아군. ② 북한군. ③ 용병. 생포 북한군은 ▲ 러시아 군복을 입고 ▲ 러시아군 인식표(신분증)를 갖고 있어 국제 관습법상 ①로 볼 여지가 있지만 ▲ 본인 소속을 '북한 정찰총국'으로 밝히고 ▲ 러시아가 자국 군으로 인정하지 않는 점 때문에 완벽히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로서는 ②(북한군)로 보는 게 당연하다 싶지만 이게 더 힘듭니다. 북한은 외교적 압박 우려 때문에 파병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공동 교전국(둘 이상의 국가가 특정 전쟁에 참여했을 때 부여하는 지위)이 아니고,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북한은 교전 당사국이 아닙니다. 국제 규약으로는 '생뚱맞게 전선에서 발견된 외국군'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③(용병)은 어떨까요. 국제 협약상 용병으로 인정되려면 사적 이익을 얻을 목적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해서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①, ②, ③ 모두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 러시아 군복과 물건들을 배급받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 측은 본인들의 입장 표명 없이도 우크라이나가 알아서 '러시아 군으로 여겨주길' 원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군 병사들에 러시아 군복을 입히고, 본인이 아닌 러시아 연방의 자치 공화국(투바) 남성의 신분증을 소지하도록 한 게 증거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파병 사실을 감출 수 있고, 포로 교환을 하더라도 일단 러시아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도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 北 포로 '전략적 활용'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그 의도대로 움직여줄 리는 없죠. 여론전에 능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한군 포로 영상을 공개하면서 본인의 SNS에 한글로 "김정은이 러시아에 억류된 우크라이나 전쟁 포로와 북한 군인의 교환을 조직(추진)할 수 있을 경우에만 북한 군인을 김정은에게 넘겨줄 준비가 돼 있다"라고 적었습니다. '포로 교환'을 협상할 당사자는 러시아지만, 이들의 신병 문제를 러시아가 아닌 북한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입니다.

생포한 북한군을 공개해 국제 사회에 북한 참전 사실을 확인시키고, 추가 파병을 막는 '다목적 카드'로 쓴 셈입니다. 사실 포로 영상을 공개하는 건 제네바 협약 13조 위반(전쟁 포로는 항상 보호돼야 하며, 폭력이나 위협 행위, 모욕 및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이라 떳떳하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생포된 북한군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뜻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선을 시찰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아가 "귀환을 원하지 않는 북한 병사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제3국 송환 가능성을 열어둔 건데요. 이들을 우리나라로 데려오기 위해선 여러 가정을 덧붙여야 합니다.

■ '한국행' 강하게 원해야 송환길 열려

첫번째 가정은 이들이 전쟁 포로로 인정될 때입니다. 물론 러시아와 북한이 이들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낮은 확률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전쟁 포로가 되면 제네바 협약에 따라 본국(러시아 혹은 북한) 송환이 원칙인데, 여기서 인도적 구호 기관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개입할 수 있습니다.

ICRC 규정은 포로가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기본권 침해 위협이 있으면 송환 의무의 예외를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독재와 인권 탄압 국가이기 때문에, '본국 송환 원칙'을 깨트릴 수 있는 겁니다. 이걸 근거로 '북한군은 원하는 나라로 보내준다'라는 합의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맺어진다면 국내 송환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군에 생포된 북한군 [KBS 보도 캡처]
두번째 가정으로, 이들이 전쟁 포로로 끝내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사실 이럴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더 크긴 합니다. 이들은 국제법상 '불법 전투원'으로 간주되고 우크라이나 국내법에 따라 살인죄 등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한국행을 강하게 원한다면 우리 정부가 끼어들 틈이 생기게 됩니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적용해 국내로 데려오는 방법입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 헌법상 우리나라 국민인 점 ▲ 북한 정권이 참전이 아니라 훈련이라고 속인 점 ▲ 우크라이나 군인을 살상할 의도가 없었던 점 등을 우크라이나와 협상 논리로 내세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엄연히 '범죄인'으로 데려오는 만큼, 한국에서 유·무죄 선고 등 형식적인 사법 절차를 거쳐야 하긴 합니다.

■ 스무 살 한반도 청년의 운명은

결국 고차 방정식입니다. 북한군 포로의 신병 처리 문제에는 전쟁의 두 주요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뿐만 아니라 파병국인 북한, 우크라이나의 간접 지원국인 한국 등 4개국을 비롯해 여러 법적·절차적 문제가 걸려있습니다.

변상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군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우선적 관할권을 갖게 되므로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와 협의해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김정은과 북한 정권을 '전쟁 범죄 공범'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방안도 고려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에 생포된 북한군 [KBS 보도 캡처]
소설 <광장> 속 명준은 번민하다가 중립국을 가는 배 위에서 끝내 몸을 던집니다. 20살, 26살의 두 북한 군인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행을 선택할까요. 그렇다고 고향에 돌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입니다. 한반도의 청년들은 70여 년 만에 다시 잔인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 기사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이슈브리프: 러시아 파병 북한군의 국제법상 지위와 고려사항(변상정)>을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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