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 헌법 초안 보니 ‘민생’ 한목소리…“최악 개헌은 ‘유신’”

입력 2018.07.17 (21:07) 수정 2018.07.1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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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현재 우리나라 헌법의 근간은 해방 직후에 만들어진 제헌 헌법인데요.

정치적으로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시절이었지만, 민생을 챙기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는 의지는 좌우 할 것 없이 똑같았습니다.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된 유진오 선생 헌법 초안, 그리고 좌파,우파의 헌법 초안을 정성호 기자가 비교해 봤습니다.

[리포트]

육중한 철문 너머, 소장고의 종이상자를 열자 빛바랜 원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1948년 유진오 박사가 쓴 헌법 초안으로, 제헌 헌법의 근간이 됐습니다.

유진오 안은 2년여 전 만들어진 좌파와 우파의 헌법 초안 등을 참고했습니다.

좌파인 민주주의민족전선, 민전은 국호를 '조선민주공화국'으로, '인민'이라는 말을 버렸습니다.

우파인 '민주의원'은 대한민국이란 국호에 민주공화국을 정체로 규정했습니다.

좌우 모두 3권분립을 얘기했지만 속내는 달랐습니다.

[조광/국사편찬위원장 : "(우파는) 대통령 권한을 강화시킨 내각책임제 형식이었습니다. (좌파의) 인민 대표자 대회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정치 구조는 오늘날 국가 사회주의적인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생과 직결된 경제 조항만큼은 좌우가 따로 없었습니다.

좌파인 민전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시설은 인민 공동소유라고 규정했고, 우파인 민주의원조차 토지 사유 제한과 주요 공업과 광산의 국영화를 강조했습니다.

제헌헌법에는 이를 포함해 노동자가 이익을 분배받을 권리인 이익분배균점권 등 좌우의 주장이 고루 담겼습니다.

[김수용/대구대 교수 : "(제헌헌법에는) 봉건적인 제도를 타파하려고 했었고, 대표적인 것이 토지 또는 농지개혁, 일제 식민지 당시에 있었던 적산문제, 어떻게 민중들에게 나눠줄 것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들 헌법 초안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민초들의 염원이 녹아 있습니다.

[기자]

1948년 헌법 제정부터 마지막 개헌인 1987년 9차 개헌까지,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개헌은 무엇일까요?

헌법학자 8명에게 물었습니다.

헌법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헌법 제정과 3차, 7차, 9차 개헌을 꼽았습니다.

먼저 1948년 제헌 헌법.

3권 분립과 국민 기본권 보장 등 현재 헌법의 토대가 됐습니다.

"국민적 공감대 아래 우리 스스로 만든 헌법"이란 평가입니다.

4.19 혁명으로 탄생한 3차 개헌.

여야 합의로 이룬 첫 개헌인데, 언론 출판 허가제를 금지하는 등 기본권 보장이 대폭 강화됐습니다.

헌법학자들은 3차 개헌을 "과거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라고 규정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쟁취한 9차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 도입, 헌법재판소 설치 등을 담아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와 결별하는 새 헌법의 제정"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 헌법학자들이 "헌법의 진공상태" "헌법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고 입을 모은 사상 최악의 헌법.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시킨 유신헌법.

7차 개헌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항쟁 등을 거쳐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주도한 8차 개헌도 나쁜 개헌으로 꼽혔습니다.

권위주의 시대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오롯한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한 국민들의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KBS 뉴스 정성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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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 헌법 초안 보니 ‘민생’ 한목소리…“최악 개헌은 ‘유신’”
    • 입력 2018-07-17 21:11:04
    • 수정2018-07-17 22:25:14
    뉴스 9
[앵커]

현재 우리나라 헌법의 근간은 해방 직후에 만들어진 제헌 헌법인데요.

정치적으로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시절이었지만, 민생을 챙기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려는 의지는 좌우 할 것 없이 똑같았습니다.

제헌 헌법의 기초가 된 유진오 선생 헌법 초안, 그리고 좌파,우파의 헌법 초안을 정성호 기자가 비교해 봤습니다.

[리포트]

육중한 철문 너머, 소장고의 종이상자를 열자 빛바랜 원고가 눈에 들어옵니다.

1948년 유진오 박사가 쓴 헌법 초안으로, 제헌 헌법의 근간이 됐습니다.

유진오 안은 2년여 전 만들어진 좌파와 우파의 헌법 초안 등을 참고했습니다.

좌파인 민주주의민족전선, 민전은 국호를 '조선민주공화국'으로, '인민'이라는 말을 버렸습니다.

우파인 '민주의원'은 대한민국이란 국호에 민주공화국을 정체로 규정했습니다.

좌우 모두 3권분립을 얘기했지만 속내는 달랐습니다.

[조광/국사편찬위원장 : "(우파는) 대통령 권한을 강화시킨 내각책임제 형식이었습니다. (좌파의) 인민 대표자 대회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정치 구조는 오늘날 국가 사회주의적인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생과 직결된 경제 조항만큼은 좌우가 따로 없었습니다.

좌파인 민전은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시설은 인민 공동소유라고 규정했고, 우파인 민주의원조차 토지 사유 제한과 주요 공업과 광산의 국영화를 강조했습니다.

제헌헌법에는 이를 포함해 노동자가 이익을 분배받을 권리인 이익분배균점권 등 좌우의 주장이 고루 담겼습니다.

[김수용/대구대 교수 : "(제헌헌법에는) 봉건적인 제도를 타파하려고 했었고, 대표적인 것이 토지 또는 농지개혁, 일제 식민지 당시에 있었던 적산문제, 어떻게 민중들에게 나눠줄 것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들 헌법 초안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민초들의 염원이 녹아 있습니다.

[기자]

1948년 헌법 제정부터 마지막 개헌인 1987년 9차 개헌까지,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개헌은 무엇일까요?

헌법학자 8명에게 물었습니다.

헌법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헌법 제정과 3차, 7차, 9차 개헌을 꼽았습니다.

먼저 1948년 제헌 헌법.

3권 분립과 국민 기본권 보장 등 현재 헌법의 토대가 됐습니다.

"국민적 공감대 아래 우리 스스로 만든 헌법"이란 평가입니다.

4.19 혁명으로 탄생한 3차 개헌.

여야 합의로 이룬 첫 개헌인데, 언론 출판 허가제를 금지하는 등 기본권 보장이 대폭 강화됐습니다.

헌법학자들은 3차 개헌을 "과거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라고 규정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쟁취한 9차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 도입, 헌법재판소 설치 등을 담아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와 결별하는 새 헌법의 제정"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반면, 헌법학자들이 "헌법의 진공상태" "헌법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다"고 입을 모은 사상 최악의 헌법.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시킨 유신헌법.

7차 개헌입니다.

5.18 광주 민주화항쟁 등을 거쳐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주도한 8차 개헌도 나쁜 개헌으로 꼽혔습니다.

권위주의 시대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오롯한 민주주의를 이뤄내기 위한 국민들의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KBS 뉴스 정성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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